벤처에 대한 기대감이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던 지난해 후반기에도 일반의 우려와 달리 현장에서 느끼는 창업열기는 쉽게 식지 않았다.
아이디어가 곧 사업계획이며 일단 회사부터 세워놓고 보자던 때에 비해 숫자는 줄어 들었는지 모르지만 ‘준비된 창업’은 여전히 상담창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이들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초기 벤처기업의 핵심인력들이 경영진과 마찰을 빚고 뛰쳐나와 재창업을 시도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점이었다.
지난해말 만났던 ‘김 팀장’은 당시 무선통신장비를 제조하는 B사의 개발책임자였다. 그는 모 대기업의 연구개발부서에서 일하다 지난해초 B사 사장의 제안을 받고 동료들과 함께 B사에 합류했다.
이 회사의 사장은 김 팀장을 영입한 뒤 무선통신분야의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명목과 향후 2년 이내에 코스닥에 등록한다는 계획을 들고 벤처캐피털을 비롯한 자금시장에서 상당한 자본을 유치했다.
그러나 이 회사 사장은 당초 약속과 달리 신규사업이 아니라 당장 돈이 될 것 같은 다른 사업에 자금을 투입했다. 막상 신규사업에 모험을 걸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에 불만을 품은 김 팀장은 회사와 갈등을 빚었고 고민끝에 그간 개발해온 아이템을 사업화하자는 데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퇴사, 재창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이미 개발성과는 B사의 지적소유물이므로 김 팀장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경우 미국에서는 회의때 메모한 간단한 노트조차 퇴사한 직원이 소지할 경우 문제가 된다.
또 B사에 투자했던 주주들 사이에도 이해가 얽히면서 경영자·직원·주주간의 갈등은 더욱 악화됐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김 팀장은 더이상은 시간낭비라고 판단, 결국 전혀 다른 아이템의 창업을 결정했다.
이같은 재창업의 경향은 지난 2∼3년새 벤처붐을 타고 벌어졌던 흔한 일들 중 하나에 불과할지 모른다. 창업과정에서 내부직원들 사이의 의견차이로 애초의 사업계획이 무산되는 것은 상호 큰 피해가 아닐 수 없다.
이 경우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이전 기업과 이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신규창업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안이다. 지불방식은 창업법인의 주식, 현금, 상용화 이후의 로열티 방식 등 다양하게 운영할 수 있다.
한단계 더 나아가 기존 기업과 신규 법인이 사업의 파트너가 돼 끌어주고 밀어준다면 더할나위없는 상생의 모델이 될 것이다. 만약 이런 긍정적인 결론을 낼 수 없다면 기술적인 차별성으로 법률저촉을 피해가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창업과정에서는 고용계약이나 보상문제·지적재산권 등에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문제점은 없는지 세심히 따져봐야 한다. 그러한 문제때문에 소중한 기술과 사업역량이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잃고 사라진다면 이는 필자 혼자만의 아쉬움은 아닐 것이다. 김 팀장의 새로운 도전이 성공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