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라는 화두가 인터넷에서 일상화되고 있다.
혹자는 이미 엔터테인먼트 상품으로서 한계효용체감이 발생하기 시작한 용어라고도 분석한다. 그러나 대중들의 기호가 ‘엽기’라는 이미지에 대해 항상 변화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기존에 엽기로 불리던 이미지는 하드코어(hard core)와 하드고어(hard gore)로 대변되는 저항적 이미지였다. 하지만 엽기상품이 호소력을 갖게 되면서 상상력의 한계를 붕괴시키는 탁월한 이미지들이 엽기 이미지를 새롭게 대체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전략 중의 하나가 상식을 뒤엎는 ‘패러디의 미학’이다.
이는 일본 ‘토토로’의 열기를 잠재운 ‘엽기토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달에서 절구를 찧는 토끼의 그림자가 사실 변기를 뚫고 있는 형상이라는 기상천외한 해석, 토끼에게 큰 덩치의 곰이 자신의 먹거리를 전부 빼앗기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이런 설정을 통해 엽기라는 이미지는 이제 불쾌함이 아닌 상상력의 한계를 부숴버리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28년 만에 칸영화제의 보수적인 편견을 부수고 당당히 장편 경쟁부문에서 상영된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슈렉’ 역시 ‘패러디의 미학’을 선보인다. 슈렉은 상식을 뒤엎는 과장된 공상과 익숙한 일상의 패러디라는 정교한 장치를 통해 변신시키는 마력을 보여줬다.
주인공 슈렉은 늪지대에 사는 고약하고 추악한 초록빛 몬스터다. 기존 주인공들이 수려한 외모의 백인이던 것에 비하면 모험적인 시도다. 그가 이야기 속에서 ‘잠자는 숲속의 공주’ 피로나를 구해오는 목적은 정의나 사랑이 아니다. 단지 자신이 살고 있는 늪지대를 조용하게 하기 위해, 즉 자신의 사생활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공주를 구출할 뿐이다.
공주 피오나도 이 부분에서 빠지지 않는다. 외모만 아름다울 뿐이지, 처음부터 백마 탄 왕자만 기다리는 노골적인 내숭쟁이다. 또 못먹는 음식이 없는, 성질 괴팍하고 터프한 심술쟁이로 등장한다.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슈렉과 피오나 공주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이루는 귀족 파쿠아드경이다. 파쿠아드경 또한 기존의 귀족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숏다리에 어떻게 해서라도 왕이 되겠다는 속물 근성을 지닌 독특한 캐릭터다. 특히 외모가 월트디즈니사의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과 닮았다는 점은 그가 살고 있는 성의 모습이 디즈니랜드와 흡사하다는 점과 함께 이 작품의 또 다른 흥미거리다.
80년대 디즈니사에 함께 부임하면서 디즈니 제국의 부활을 고민하던 제프리 카젠버그는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킹’까지의 성공작에도 불구하고 아이스너 회장과의 불화로 자신의 능력이 인정받지 못했다. 디즈니를 나와 드림웍스에 참여한 카젠버그는 그후 월트디즈니의 철옹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쟁을 시작한다. 가젠버그는 디즈니와 픽사의 ‘벅스라이프’가 개봉되기 전 ‘개미’를 개봉하고, ‘이집트의 왕자’라는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디즈니의 여러 기획들을 반감시켰다.
카젠버그는 이제 디즈니의 매너리즘을 엽기 패러디라는 고도의 전술로 비판한다. 디즈니가 축적해 놓은 동화의 이미지를 활용, 오히려 ‘슈렉’의 유머를 기반으로 극대화하고 있다.
2001년 여름에 엽기 패러디의 새 틈새시장이 대중 속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트렌드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한 기획 감각이다.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