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PC 출범 초기와는 달리 인터넷PC사업이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인터넷PC 제조업체들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다양한 프로모션을 마련해 제2의 인터넷PC 붐을 일어켜볼 작정입니다.”
지난 99년 10월 정보통신부는 ‘사이버코리아 21’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터넷PC사업을 발족했다. 한국이 지식기반사회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정보 습득 수단인 PC의 보급을 늘려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인터넷PC사업은 사업 초기에는 정부의 지원에다 파격적인 가격, 할부제도 등 기존 PC와 차별화가 부각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잇따른 가격인하, 할부제 도입 등으로 가격적인 매력을 상실하면서 최근에는 소비자나 제조업체 모두에게 잊혀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소방수 역할을 자청한 사람이 있다. 최병진(51) 현대멀티캡 사장이 바로 그다.
최병진 사장은 이달 초 인터넷PC협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최 회장은 현대전자 시절 지난 87년부터 92년까지 미국 현지법인에 근무하면서 한국의 1세대 PC수출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87년 대우전자를 시작으로 현대전자 등이 미국에 PC 수출을 개시, 5%에 가까운 시장점유율까지 차지했습니다. 에이서와 같은 대만 업체보다 높은 점유율이었죠. 그러나 몇 번의 실수가 거듭되면서 미국 시장에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PC산업에 대해 좀더 과감한 투자가 있었다면 현재 국내 PC산업의 면모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고 회상했다.
최 회장은 “인터넷PC는 공급물량의 40%가 농어촌 지역 저소득층에 공급됐습니다. 디지털디바이드(정보격차)를 줄이는 데 크게 일조한 셈이지요. 또 국내 PC의 평균가격을 100만원대로 끌어내렸습니다. 일각에서는 PC산업을 저마진 구조로 이끈 주범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거품을 제거해 PC 보급률을 높인 공로는 분명 인정해야 합니다”라고 인터넷PC사업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이런 공격적인 사업이 인터넷PC의 경쟁력 약화에 요인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PC사업 부진에 대해 최 회장은 “대기업들이 PC 가격을 크게 인하하면서 인터넷PC와 대기업 PC의 가격차가 크게 줄어들었고 다양한 할부기법이 도입돼 인터넷PC의 장점이 많이 상실됐다”며 “더욱이 인터넷PC 제조업체들조차 사업 의지가 많이 희박해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터넷PC사업 초기에는 12개사가 참여했으나 사업 침체로 최근에는 7개 업체만이 인터넷PC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증상이 분명한 만큼 처방도 뚜렷하다.
최 회장은 “우선 회원사들의 결속력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또 공동 마케팅·프로모션 등 인터넷PC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마케팅 전략도 수립 중입니다”고 밝혔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현재와 같은 결속력으로는 시장 확대가 어렵다”며 “회원사들을 하나로 묶어 하나의 회사로 활동할 수 있는 사이버컴퍼니 형태로 인터넷PC협회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사이버컴퍼니’는 제품 기획부터 마케팅 프로그램·사후관리(AS)·부품 공동구매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회사가 인터넷PC사업과 관련, 마치 하나의 회사처럼 운영되는 형태를 말한다. 이를 통한 이익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보다 결속력을 높이는 장치로 작용하게 된다.
최 사장은 “사이버컴퍼니로 운영될 경우 현재 인터넷PC의 문제점으로 부각된 가격차별화 미비, 서비스 불만족 등이 상당부분 개선될 것”이라며 “많은 회원사들이 이에 대해 공감을 표시했다”고 설명했다.
제품 이미지도 바꿀 계획이다. 인터넷PC가 그동안 가격은 싸지만 성능 면에서는 부족한 PC로 인식돼온 것을 바꾸겠다는 얘기다. 최 회장은 “최근의 PC 시장에서 데스크톱PC는 정체되고 있지만 노트북PC는 큰 폭의 성장을 하고 있다”며 “우선 일본과 국내 대기업의 최고급 노트북PC 제품과 경쟁할 수 있는 고사양 제품도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데스크톱PC도 IEEE1394 등 국내 최고 사양의 멀티미디어 기능이 탑재되는 고급형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또 공동으로 개인휴대단말기나 웹패드와 같은 포스트PC사업에도 진출한다는 방침이다.
최 회장은 인터넷PC협회를 국내에만 한정하지 않고 해외 진출까지도 공동으로 모색하는 사이버컴퍼니로 육성한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최 회장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브라질 등 개도국에서 국내와 비슷한 국민PC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의 인터넷PC사업을 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며 “이런 해외 국가사업에 인터넷PC협회가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국가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으며 정통부에도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보통신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그는 “인터넷PC가 국내 PC 보급률을 높여 국내 정보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며 “일반금융보다 높은 보증보험료를 낮춰 주고 농어촌 정보화사업·교육정보화사업·관공서 구매 물량에 인터넷PC가 우선 보급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PC산업이 이제 성숙기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질문에 “집에 초등학생만 있어도 부모는 PC를 쓰기 힘들다”며 “인터넷 기반 사회에서는 한 가정 내 PC 1대가 아니라 2, 3대가 보급돼야 하고, 동남아·중국 등 아직 PC 보급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한 국가들도 많아 아직도 수요는 무궁무진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최병진이라는 새로운 선장을 맞이하게 된 인터넷PC협회가 난관을 이기고 다시 순항할지 PC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이력>
△51년생 △70년 경복고등학교 졸업 △74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77년 현대건설 입사 △86년 현대전자산업 반도체 영업본부 차장 △87년 현대전자산업 재무부 차장 △87년 현대전자 미국 현지법인 부장 △92년 업무개선실 이사 대우 △96년 시스템IC 영업본부 이사 △97년 멀티미디어부문 경영지원팀 이사 △98년 현대멀티캡 대표이사 사장 △2001 6월 인터넷PC협회 회장 △취미:골프 △가족:부인과 1남 1녀
<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