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델 부진 왜일까

 PC와 PC서버 부문 세계 정상의 업체인 델이 유독 한국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뭘까.

 직접판매 비즈니스 모델로 유명한 델컴퓨터가 세계시장에서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델컴퓨터는 올들어 1분기 세계 PC 시장에서 컴팩컴퓨터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선 데 이어 워크스테이션 시장에서도 세계 정상을 차지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서버부문에서도 출하량 기준으로는 컴팩에 이어 2위에 오를 정도로 스토리지를 제외한 컴퓨팅 시장 전체에서 고른 성적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국내시장에서 한국델은 PC부문은 물론 PC서버부문서도 삼성전자와 LGIBM·컴팩코리아 등 국내 업체와 외국계 업체에 밀려 뚜렷한 실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PC사업의 경우는 삼성전자·삼보컴퓨터·LGIBM 등에 밀려 데스크톱·노트북 모두 일반 소비자 대상 제품은 출시하지 못한 채 기업용 제품만을 내놓고 있으며, 서버부문의 경우도 PC서버군인 ‘파워에지시리즈’를 내놓고 있으나 전체 시장의 8% 정도로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우선 경기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기는 하지만 ‘미국식 직판모델’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 본사 CEO인 마이클 델이 창업초기부터 고수하고 있는 직판모델은 국내시장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국내시장은 특히 서버 등 기업용 제품으로 갈수록 채널 판매망이 워낙 강해 일반PC와는 달리 기업용 시장을 공략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PC의 경우도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과 브랜드 이미지가 너무 강해 좀처럼 시장진입이 힘들 뿐더러 각종 물류비용과 관세를 감안하면 가격경쟁력 또한 떨어진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같은 표면적인 이유외에 내부적인 문제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외국계 기업의 경우 해외진출 성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현지화’다. 얼마나 해당 지역 시장 환경에 알맞게 제품과 마케팅·영업을 적용시키느냐가 사업 성공의 관건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델은 국내 시장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본사 차원의 직판모델 원칙에 매달린 나머지 우수한 제품을 가지고도 번번이 대형 고객을 놓치는 등 영업에서 많은 실패를 보고 있다.

 또한 국내 지사가 싱가포르에 위치한 델의 아태본부 위주로 운영되다보니 마케팅 및 홍보에서도 통제가 심하다. 아태본부와의 커뮤니케이션 통로 또한 다양해 사장을 정점으로 한 체계적이고도 일사분란한 영업체제를 갖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장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장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영국 등 초기 부진을 겪다 상승세를 탄 나라들도 있어 미국식 직판모델의 유·불리를 논하기는 이르다”며 “문제는 사장을 정점으로 한 일사분란한 영업체계 구축 및 마케팅의 활성화를 위해 현지사장의 권한을 확대하고 보다 전문적인 인력을 수혈하는 등 일대 혁신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