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시행된 많은 방송정책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정책 중 하나가 프로그램공급업자(PP)등록제였다.
당초 PP등록제는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세부적인 법 조항들을 손보느라 3월 들어서야 시행에 들어갈 수 있었다.
3월부터 6월 현재까지 약 4개월 동안 방송위원회로부터 PP등록증을 받은 채널은 81개 사업자, 191개(비디오채널 94개, 오디오채널 97개) 채널에 달한다.
비디오 채널의 경우 1·2차 PP 49개를 합치면 140여개에 달해 작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통합 방송법 발효로 1년 전부터 예고됐던 제도였지만 막상 시행에 들어가고 보니 여기저기서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등록제로 인한 부실 PP들의 양산이다. 지난 4개월 동안 방송위로부터 등록증을 교부받은 94개 비디오 채널 가운데 기존의 지상파나 복수PP(MPP) 등에서 만든 PP를 제외하면 상당수 신규 등록 PP들은 채널을 어떻게 운영할 것이고 인력채용은 어떻게 할 것인지의 계획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얼마 전 있었던 한국디지털위성방송의 채널사업자 선정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12개 장르 중 38개 PP가 사업자 신청을 냈던 정보장르의 경우 35개 PP가 탈락하고 겨우 3개 PP만 사업자로 선정됐다.
위성방송은 이에 대해 ‘자격미달’을 이유로 들었다. 신규 등록 PP들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해 본 결과 여러 가지 면에서 수준 이하였다는 것이다.
이같은 부실 PP의 양산에는 방송위의 책임도 크다. 방송위는 PP등록제 실시 이후 보다 많은 사업자가 PP사업에 나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본금 5억원과 장비도입계획 등을 제출하면 대부분 등록증을 교부해 주었기 때문이다. 방송위는 또 똑같은 이름의 채널을 중복해서 등록해준 뒤 말썽이 나자 나중에 이를 시정하는 등 등록과정의 허술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음으로 PP등록제는 부익부 빈익빈을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MPP는 온미디어와 제일제당 등 몇 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등록제가 시행되면서 지상파 3사가 모두 MPP 대열에 가세했으며 기존 PP와 MPP들도 한두 개에서 서너 개의 채널을 추가해 덩치를 불렸다.
방송산업의 특성상 전문인력을 하루아침에 양성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력과 근무조건 등이 월등히 나은 지상파나 MPP 등에 방송인력이 몰리게 돼 결국 영세한 신규 PP들은 전문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게 됐다. 이러한 구조는 영세 신규 PP들의 부실화를 부채질했다.
위성방송이 영세한 PP들을 적극 수용하지 않은 것도 PP등록제가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주고 있다.
신규 등록 PP 중 상당수가 기존 케이블TV보다 위성방송에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막상 뚜겅이 열리자 결과는 신규 등록 PP들의 참담한 패배로 나타났다. 물론 위성방송의 경우 상업적 성공이 가장 우선돼야 하지만 해도 너무했다는 것이 영세 PP들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위성방송만 바라보고 PP사업자로 등록했던 채널들의 경우 앞으로 1년 동안 채널을 공급할 수 없게 되면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업을 시작해 보기도 전에 문을 닫아야 하는 업체가 속출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다음으로 방송산업을 발전시키고 전문인력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정책들이 PP등록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시급히 고쳐져야 할 과제 중 하나다.
방송위원회와 문화관광부가 PP산업 발전을 위해 막대한 돈과 인력을 투자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생색내기식의 지원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