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53억원 대 457억달러’
게임종합지원센터가 지난달 말 발간한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실린 지난해 국내 게임시장과 세계 게임시장의 매출 규모다. 수치만 놓고 비교하면 국내시장은 세계시장의 1.4%에 지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게임이 안되는’ 규모다. 온라인게임은 세계 최강, PC게임은 아시아 최대라고 자화자찬해온 우리로서는 정말 자존심 상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이다. 우리나라 게임산업이 최근 2∼3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 세계시장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이같은 현상은 국내 게임산업이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급자족형 후진 모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기술력과 인프라를 자랑하는 온라인게임의 경우 해외진출은 이제 시작단계다. PC 및 아케이드 게임 역시 매출의 90% 이상을 국내시장에서만 올리고 있다.
미국 및 유럽 게임업체들이 매출의 50%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것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국내 게임산업이 향후 몇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할 것이란 전망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게임백서에 따르면 국내 시장규모는 올해 처음 1조원대를 돌파, 2003년에는 1조5700억원대로 연 20% 이상 고공비행할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PC게임의 경우 국내에서 아무리 많이 팔아도 10만장을 넘기기가 힘들다. 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신작 타이틀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신작 게임의 경우 갈수록 대작화, 제작비만 수십억원을 넘는 것이 예사다. 이런 조건에서는 제작비조차 건지기 힘든 여건이다.
따라서 ‘글로벌 비즈니스’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물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지 않고는 업체는 물론 산업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몇몇 선두업체들은 이미 사업방향을 글로벌 비즈니스에 맞추고 있다.
PC게임 개발사인 판타그램인터랙티브(대표 이상윤)는 지난해 말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킹덤언더파이어’를 전세계 32개국에 동시 출시, 그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특히 판타그램은 미국·일본·유럽 등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아예 글로벌 게임배급사로 탈바꿈하고 있다.
소프트맥스(대표 정영희)는 3년 전부터 대표작인 창세기전 시리즈를 일본·대만·중국 등에 수출, 20만장 가량 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밖에 재미시스템·조이맥스·이투소프트·동서게임채널 등은 동남아와 중국시장을 대상으로 크고 작은 수출실적을 거뒀다.
온라인게임 업계도 마찬가지다.
엔씨소프트(대표 김택진)는 지난 5월 세계적인 게임 개발자 리처드 게리엇 형제를 431억원의 거금을 들여 영입하는 등 세계시장 공략에 포문을 열고 있다.
드래곤라자(삼성전자)·천년(액토즈소프트)·레드문(제이씨엔터테인먼트) 등은 대만 진출에 이어 최근엔 중국시장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업체의 글로벌 비즈니스는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해외진출의 당위성을 갖고 세계시장을 잇따라 노크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영세하기 그지없다. PC게임의 경우 수출계약이 체결될 경우 로열티는 고작 10만∼30만달러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온라인게임은 해외서비스에 드는 비용 이상의 수익이 아직 발생하지 않고 있다.
수출 국가가 한정돼 있는 것도 문제다. 게임의 본고장인 미국이나 유럽에 진출하는 사례는 거의 없고 기껏해야 대만·태국·중국 등 아시아지역 마이너 시장의 문턱을 넘고 있다.
판타그램 이상윤 사장은 “국내 게임업체들이 경쟁적으로 해외진출을 서두르고 있으나 정서가 비슷한 아시아시장에만 맴돌고 있다”며 “이는 게임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글로벌 비즈니스에 대한 마인드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비즈니스는 이미 기획단계에서 성패가 판가름 난다고 입을 모은다.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철저히 분석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게임이 완성된 이후 아무리 노력해도 ‘국내용’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인기를 끌면 해외에서도 어느정도 팔릴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는 결코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핵심은 게임 소재 발굴이나 캐릭터 개발 등 게임 개발 초창기부터 전세계인의 정서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현지법인 설립이나 국제게임박람회 참가 등 다양한 채널을 가동, 해외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혜안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작단계에서는 해외 개발인력을 과감하게 영입하거나 앞선 해외 게임엔진을 도입하는 방안도 신중하게 검토해 볼 만하다. 특히 이같은 방안은 국산게임의 낮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다.
마케팅에 대한 발상 전환도 필요하다.
우선 해외마케팅을 전담할 부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것은 기본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해외 메이저 유통사와 끈끈한 파트너십을 만들어가는 한편 해외 인적 네트워크까지 구축, 미래시장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인터넷시대에 걸맞은 공격적인 홍보 마인드를 길러야 한다. 게임 개발소식을 국내 언론뿐 아니라 해외 언론에도 적극 알리는 공격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해외 유명 게임웹진이나 잡지에 소개된 게임은 외국업체들도 큰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자금력 부족은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아무리 좋은 기획 및 마케팅 노하우도 돈이 없으면 현실화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해외 메이저 배급사로부터 기획단계에 자금을 유치하거나 업체간 공동 프로젝트를 통한 규모의 경쟁을 벌이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게임종합지원센터 성제환 소장은 “세계 시장규모가 국내 시장규모의 수십배나 크다는 사실은 그 만큼 세계로 뻗어나갈 여지도 크다는 것”이라며 “해외진출 돌파구 마련을 위해 온오프라인 공동 배급망 구축 등 업체간 공동사업을 적극 추진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