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출범한 방송위원회는 1년 4개월 동안 많은 일들을 해 왔다.
방송위원회는 통합방송법의 발효로 그동안 정부가 맡아 오던 방송 인허가권을 비롯한 방송정책권을 이양받고 독립된 국가 행정기관으로 법적 위상을 부여받았다.
또 방송의 질 향상을 위한 심의, 시청자 불만처리, 방송관련 연구조사 및 지원, 방송발전기금의 조성 및 관리·운용 등을 관장하는 방송정책 총괄기구로 거듭 태어났다.
특히 위원장을 비롯해 상임위원을 공무원 신분으로 한 합의제 행정기구라는 독특한 조직을 통해 방송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방송위의 각종 인허가와 규제활동에 대해 방송계에서는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스런 심사와 자율적인 프로그램 규제 등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송위가 그동안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한 것은 지난해 5월에 있었던 신규 프로그램공급업자(PP) 선정과 12월 말에 있었던 위성방송사업자 선정, 올해 3월 말에 있었던 홈쇼핑 채널 사업자 선정 등을 들 수 있다.
올해 초 PP등록제 시행을 앞두고 지난해 5월 마지막으로 이뤄진 신규 PP심사에 대해 정작 사업자로 선정된 신규 PP들은 불만이 높았다.
케이블TV산업 환경이 새로운 PP를 다 수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15개나 되는 신규 PP를 선정함으로써 채널을 송출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년도 지나기 전에 PP등록제가 시행됨으로써 자본금 5억원과 간단한 서류만 있으면 누구든지 신규 PP로 등록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업권을 획득한 신규 PP의 경우 손쉽게 방송시장에 진출한 신규등록 PP와 똑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또 지난 3월 말에 있었던 홈쇼핑 채널 추가 사업자 선정결과를 발표할 때 방송위는 정부를 대표하는 행정기관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당초 홈쇼핑 사업자 선정결과는 4월 2일 월요일 오전에 있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방송위는 30일 오전 심사가 끝났다며 심사위원들을 모두 귀가조치시켰다. 이 과정에서 30일 저녁, 방송계에는 누구는 합격했고 누구는 탈락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이에 당황한 방송위원회는 일정을 급히 바꿔 31일 오전으로 발표 시기를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에 대해 방송위는 변명으로 일관했을 뿐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또 중계유선의 SO 전환에 대해서도 중계유선과 SO 모두 방송위를 상대로 법적인 대응에 나서는 등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방송계에서는 방송위가 각종 사업자를 심사하고 선정할 때 심사위원들에 대해 보다 객관적 평가와 함께 심사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방송위가 갖고 있는 양날의 칼 중 하나가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와 규제라 할 수 있다.
방송위는 지난 6월 한 달간 CJ39쇼핑을 비롯해 경인방송, SBS, 한경와우 등 4개 방송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나 관계자 징계 등의 행정조치를 취했다. 이처럼 한 달에 적게는 한두 건에서 많게는 대여섯 건까지 방송위로부터 징계를 받고 있지만 프로그램 내용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결국 방송위의 프로그램 심의가 ‘사후약방문’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설득력을 갖는다. 이미 프로그램에 나간 뒤에 사과와 징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또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TV 등 수십개의 채널을 일일이 감시하기도 벅찬데 앞으로 100개 이상의 채널을 보유한 위성방송이 시작되면 이 많은 채널들을 어떻게 관리·감독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방송위가 정부 주도의 방송 프로그램 감시기능을 과감히 민간에 이양해 철저하게 자율적으로 심사토록 하고 만약 이를 어길 경우 강도 높은 징계를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