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플렉스트로닉스사(Flextronics Int`l Ltd.)와 미국의 루슨트테크놀로지사(Lucent Technologies Inc.) 사이의 미국 내 생산공장 매각협상이 난관에 부딪혔다.
루슨트테크놀로지와 플렉스트로닉스간 6억달러 내지 9억달러 규모인 미국 중서부 지역 두 곳의 생산공장 매각협상이 무산되었다는 소문이 증폭되면서 루슨트의 주가는 폭락했다.
루슨트는 9월까지 계열사에 지원하기 위해 20억달러를 마련하려고 애쓰고 있는 상황이므로 두 곳의 시설 매각은 중요한 사안이라 할 수 있다.
플렉스트로닉스의 매입의사 철회는 미국내의 전자생산시설의 가치가 현저하게 하락했음을 보여준다. 원매자들이 미국의 설비를 외면함으로써 일본이나 중국에서의 생산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아시아로의 이러한 생산기지 이동은 미국의 첨단업체들의 구조조정을 불러올 것이며 최근 인텔나 델컴퓨터 그리고 모토로라의 인원 감축이 바로 그 예다.
플렉스트로닉스와 같은 회사들은 하청을 통해 생산하는 기업들이다. 그들은 자체 생산 업체들의 설비와 똑같은 설비를-때때로 아주 헐값에- 사들여 제품을 생산한다. 델이나 컴팩, 소니와 같은 자체 생산업체들은 자사제품의 생산을 점점 플렉스트로닉스와 같은 하청업체들을 통해 생산하고 있으며 이러한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컴퓨터와 주변기기 판매의 전세계적 불황은 하청생산업체들이 자체생산업체들로부터 그들에게는 더 이상 수익성이 없는 생산시설들을 사들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하청생산업체들은 불황에도 끄떡없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그 시설의 전략적 가치와는 상관 없이 어떤 생산시설을 매입하는 것은 업체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하청생산업체들의 새로운 전략으로 인해 미국의 컴퓨터 생산업체들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으며 그들의 과잉생산을 감축할 길도 없다.
셀레스티카, 솔렉트론, 산미나, 플렉스트로닉스 등 네개의 업체들은 3%를 웃도는 정도의 마진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 회사들은 아시아시장으로 관심을 옮기고 있으며 미국과 남미, 남동부 유럽에서 취득한 자산들을 매각하고 있다.
이를테면, 플렉스트로닉스는 수요감소로 인해 브라질에서의 공장 건설을 최근 중단한 바 있으며, 솔렉트론 역시 미국과 멕시코, 루마니아에서 공장을 아예 문닫거나 종업원들을 해고하였다.
하청생산업체들은 제품의 소비수요를 감안하면서 아시아의 설비들을 매입하려 하고 있다. 최근까지 유일하게 외국 하청생산업체들에 문을 닫고 있었던 이 지역은 PDA나 휴대전화 같은 제품의 주요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안으로 중국내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4500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내의 가입자 수는 작년말 현재 1억명이었고 이제는 별다른 증가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이 보도에 따르면 유럽의 이동전화 가입자 역시 수년 내에 포화상태에 도달해 2008년에는 증가율이 4.8%로 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하청생산업체들은 이제 아시아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자업체로 꼽은 셀레스티카는 최근 전체 수입가운데 11%를 차지하는 아시아로부터의 수입을 보다 확대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솔렉트론과 플렉스트로닉스는 이미 일본 시장을 선점하고 있으며 양 사 모두 중국시장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셀레스티카는 최근 싱가포르의 두번째 하청생산업체인 옴니사의 인수를 추진중이며 이는 셀레스티카가 아시아시장에 다가서고 지역 주도세력의 일원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그 거래를 통해 셀레스티카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생산시설을 손에 넣게 될 것이다. 기술분야 분석기관인 IDEA어드바이저에 따르면 셀레스티카의 인수는 이 회사의 수입 중 아시아에서 얻어지는 수입을 25% 비중까지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한다.
대조적으로 성사될 뻔했던 플렉스트로닉스의 미국내 루슨트 생산설비 인수는 플렉스트로닉스에 짐만 되었을 것이다. 하청생산업체들이 아시아로 달려감에 따라 그들은 미국내의 생산설비 인수의 기회를 회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미국의 전자제조업체들로 하여금 손실만 발생시키는 생산설비를 처분할 수 없게 만들었고 결국 수천명의 정규직원들을 해고하도록 만들 것이다.
아시아, 특히 중국과 일본의 전자제품제조업체들은 비교적 미국보다 적은 수의 직원을 줄여도 될 것이다. 컴퓨터 및 주변기기의 수요가 세계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미국의 생산기지들과는 달리 아시아의 생산기지들은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