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금주의 키워드>그리드(GRID)

 진공관의 음극과 양극 중간에서 전류의 흐름을 제어하는 ‘격자(格子)’에서 유래한 그리드는 인터넷 확산의 기폭제가 되었던 월드와이드웹(www)과 차세대 인터넷을 연결시켜 주는 징검다리다. 미국 시카고대학 이안 포스터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창시했으며 한 번에 한곳에만 연결할 수 있는 웹과 달리 신경조직처럼 작동하는 인터넷망구조를 말한다. 그리드는 컴퓨터에 특정프로그램을 설치해 세계 곳곳의 컴퓨터·데이터베이스(DB)·첨단장비를 연결, 개인컴퓨터로 원격조정할 수 있다는 원리에서 출발했다. 한마디로 전 세계 컴퓨터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마치 슈퍼컴퓨터처럼 쓰자는 개념이다.

 

인터넷 다음은 무엇일까. 이제는 생활의 일부가 된 인터넷의 원리를 조금이라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는 궁금증이다. 차세대 인터넷의 출발점이라 불리는 그리드는 이 질문에 명쾌한 해답은 아닐지언정 단초를 줄 수 있는 기술이다.

그리드는 일단 가상의 슈퍼컴퓨팅파워를 구축해 주는 범네트워크원리다. 가상 슈퍼컴퓨팅의 핵심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억대의 PC와 첨단장비를 하나로 묶어 제어한다는 것. 이렇게 완성된 가상 슈퍼컴퓨터는 지금의 슈퍼컴보다 수천∼수만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유휴자원을 이용해 비용을 크게 줄이면서도 대량의 데이터를 뚝딱 처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드는 궁극적으로 4A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4A란 지능화된(Advanced) 네트워크, 고성능(Advanced) 컴퓨터 및 장비, 첨단(Advanced) 애플리케이션, 고급(Advanced) 과학기술 등이 그것이다. 지능화된 네트워크는 광케이블·IPv6를 비롯해 고성능 미들웨어와 인공지능 브라우저가 포함되는 개념이다.

 고성능 컴퓨터 및 장비는 고속연산 및 정보처리가 가능한 컴퓨터와 초대용량 DB장치를 비롯해 생명공학(BT)·나노공학(NT)·환경공학(ET)을 지원하는 가속기, 열분석기, 전자현미경 등 고가의 장비가 포함된다. 첨단 애플리케이션은 그리드환경에서 적용할 수 있는 BT·NT·ET 그리고 몰입형가상현실(CAVE)과 같은 차세대 IT애플리케이션들이다. 고급과학기술인력은 말 그대로 그리드를 개발하고 구축하며 운영할 수 있는 인력의 양성을 뜻한다.

 그리드는 인터넷으로 널리 알려진 월드와이드웹과 크게 다르다. 지금의 인터넷은 모든 정보를 담은 서버에서 인터넷 이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받아보는 수직구조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그리드는 인터넷 이용자끼리 수평으로 연결하는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동시에 여러곳에 연결할 수 있다. 인근지역의 동료는 물론 지구 반대쪽 DB에 연결,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DB에서 찾은 정보를 여러사람이 동시에 보면서 한 사람의 설명을 듣거나 함께 설계도면을 그리는 일도 가능해진다. 또 한 컴퓨터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컴퓨터를 원격조정해 복잡한 계산을 나눠 처리한 후 다시 합쳐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리드는 ‘새로운 정보기술의 사회간접자본(SOC)’이라 불린다. 전문가들은 웹이 IT의 맛을 보여줬다면 그리드는 비전을 보여줄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실제로 그리드가 완성되면 기존 IT환경에서는 어려웠던 고속연산과 대량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해 BT·ET·NT 분야를 획기적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

 그리드 프로젝트는 지난 98년 처음 등장했다. 미국·유럽·일본 등의 선진국은 오는 2004년 상용화를 목표로 그리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슈퍼컴퓨터센터와 정부출연 연구소를 중심으로 98년부터 인간게놈지도 프로젝트, 지진예측분석사업 등 다양한 그리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유럽 각국의 연구기관을 연결하는 연구시험망인 ‘TEN-155’ 기반의 유로피언 데이터 그리드(기초과학연구), 유로 그리드(산업기술연구) 등을 99년부터 활발하게 추진해 왔다. 우리나라도 오는 9월 그리드 포럼이 결성돼 본격적인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관련 사이트로는 ‘과학네트워크(http://www.griphyn.org)’ ‘유럽데이터(http://grid.web.cern.ch/grid)’ ‘입자물리(http://www.ppdg.net)’ ‘지진시뮬레이션(http://www.neesgrid.org)’ 등이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