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회사원이다. 얼마 전 퇴근길에 우편함을 들여다보니 낯선 우편물이 와 있었다. 속도 위반에 대한 벌금을 내라는 고지서였다. 위반 사실에 대한 1차 통보를 받은 기억이 없어 의아했지만 그래도 언제 어디서 얼마나 위반한 것인지 궁금해서 들여다보니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위반을 했다는 그 날짜도 마침 집들이가 있는 날이어서 하루 종일 집사람과 손님맞을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이었다.
고지서에 나와 있는 전화로 확인하려 했지만 전화로 자세한 확인은 불가능하다는 말만 듣고 아까운 월차를 얻어 경찰서를 방문했다. 이러저러한 설명 끝에 벌금은 내지 않아도 되도록 처리는 하고 왔지만 기분은 상할 대로 상했다. 분명히 내가 잘못했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이야기가 진행된 것도 억울했지만 마지막으로 담당자가 던진 한마디에는 정말 분통이 터졌다. ‘전산 처리 실수’라는 것이다. 이렇게 귀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 이유가 단지 미숙한 전산 능력 때문이라니.
전산 실수라니까 또 한 가지 할 말이 있다. 몇 달 전에 운전면허증을 잃어버려 갱신한 일이 있다. 나름대로 공을 들여 잘 찍은 사진을 제출했건만 발급된 면허증을 보는 순간 기가 막혔다. 담당자가 포토샵(국가기관에서 쓰는 정확한 프로그램 종류는 잘 모르겠지만)을 잘못 다룬 탓인지 얼굴이 찐빵처럼 나온 것이다. 나는 그전에 발급받은 주민증과 나란히 놓고 아내와 한참을 웃었다. 주민증 사진은 오이처럼 길게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찐빵처럼 생기지도 않았고 오이처럼 생기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 두 가지 일은 다 공무원들이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해서 빚어진 일이다. 물론 사람이니까 실수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들의 실수 때문에 나는 아까운 하루를 낭비했고, 어디 가서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을 때 항상 망설이게 된다. 오이를 내놓을까 찐빵을 내놓을까 고민도 고민이지만 확인하는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말미에 항상 “본인 거 맞으세요” 하고 묻기 때문이다.
요즘은 다섯 살 먹은 어린아이도 능숙하게 웹서핑을 하고 초등학생도 온갖 프로그램을 다루는 세상이다. 이런 민원인들을 상대로 서비스하려면 공무원은 더 도사가 돼야 할 것이다. ‘전산 입력 실수’ ‘프로그램 운용 미숙’ 이런 말은 더 이상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카드 주민증이 나오기 전 수기로 발급해주던 주민등록증 발급업무를 맡아 예쁜 글씨를 써주기 위해 펜글씨를 일부러 배웠다던 신림동의 한 동사무소 직원 같은 분은 다시 만나기 어려울까 생각해본다.
이병용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