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디자인지역화 앞당기자.

◆정경원 한국디자인진흥원장

 사이버공간을 통해 글로벌화·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의 움직임에 대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지역화의 물결 또한 거세다. 즉 세계화와 더불어 지역화라는 양대 물결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세계인의 공통적인 기호 및 취향의 연구도 필요하지만 우리만의 독창성을 찾는 정체성 확립이 더욱 중요하다.

 디자인 선진국들의 경우도 자국의 문화와 전통에 뿌리를 둔 고유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지방별로 고유한 디자인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탈리아의 예를 들면 밀라노에는 패션산업, 토리노에는 자동차 산업, 피렌체에는 피혁·귀금속 산업 등 각 지방 특유의 문화와 전통을 독특한 디자인으로 상품화해 발전시켜 왔다. 또한 일본의 경우도 현마다 ‘디자인센터’를 설치하고 문화와 전통에 근거를 둔 디자인 개발에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도 고유의 디자인으로 성공하고 있는 사례들이 있다. 분청사기를 현대화한 타일 등이 인기를 끌어 유럽 등지에 고가로 팔려 나가고 있으며 넥타이에 한국을 상징하는 문양을 넣어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예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관광상품의 경우 아직도 어디를 가나 비슷한 것이 많다는 지적이다.

 최근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김에 따라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고 세계인 앞에 우리의 옛것을 과감히 내보이게 되는 전시회 등이 늘어났다. 여기에 참가한 외국인들이 우리의 것을 보고 놀라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릇을 보더라도 고려인의 독특한 예술감각으로 탄생한 상감청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분청사기의 편안함과 소박한 아름다움, 이조백자의 담백하고 절제된 미에 세계인들이 탄복하고 있다.

 ‘세계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의 회장인 아우구스토 모렐로는 우리나라 민속박물관을 둘러보고는 감탄을 연발했다. 우리의 문화유산 하나하나에서 모두 독창적이면서도 훌륭한 디자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서양의 모종삽보다 훨씬 뛰어난 인체공학적인 호미의 디자인이나 조선시대 복식의 세밀한 자수와 매듭, 우아하고 날렵한 한옥의 처마선 등에서 감성을 울리는 디자인을 발견한 것이다. 이같이 역사와 전통이 오랜 우리는 디자인 소재가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올 10월에 서울과 성남에서 열리는 ‘세계산업디자인대회’에서 주제로 제시한 ‘어울림’의 철학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디자인은 전통적으로 인간과 환경의 조화로운 가치를 추구해 왔다. 이러한 깊은 디자인의 철학이 깃들인 우리 것에 대해 이제부터라도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지방마다 유구하고 찬란한 문화와 전통이 있다. 이를 소재로 독창성과 고유성을 도출한다면 세계에 자랑할 만한 디자인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21세기는 단순한 기능이나 형태보다는 문화적인 스토리가 있는 디자인이 호소력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지방자치단체에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세계산업디자인대회’를 개최하게 된 도시에서 디자인도시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러한 디자인 거점도시들이 전국적으로 많이 생겨나야 한다.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그동안 지역의 디자인 발전을 위한 부산의 남부지원과 대전의 중부지원을 운영해 오다 이번 광주지역에 호남지원을 개설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한 이미 전국적으로 설치된 디자인혁신센터는 현재 분당에 짓고 있는 코리아디자인센터를 중심으로 디자인산업이 지역마다 자생력을 가지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바람직한 생태계를 조성하게 된다. 이같은 정부의 지역 디자인 발전 노력에 발맞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디자인산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지원체제를 갖춰 나가야 한다. 디자인의 지방화는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통해 선진국 진입을 위한 선결과제이기 때문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장 ceo@kidp.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