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서 생산하는 128MB 싱크로너스 D램(SD램)을 구입, 256MB SD램 모듈로 만든 뒤 삼성전자의 상표를 부착하는 방법으로 220여억원 상당의 메모리를 시중에 유통시킨 제조업자와 유통업자 등 7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도 수원 남부경찰서는 지난 14일 권모씨(29·서울 금천구 독산동) 등 반도체 제조업자 2명과 박모씨(29·서울 서초구 방배1동) 등 판매업자 5명을 상표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권씨는 지난해 1월부터 이달 12일 사이에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금천구 독산동 P반도체 회사에서 삼성전자의 128MB SD램 컴포넌트를 구입, 시가 130억원 상당의 256MB SD램 모듈을 만들고 여기에다 삼성전자 상표를 부착해 반도체 유통업자들을 통해 시중에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서 반도체 판매업을 하는 박씨 등 5명은 권씨 등에게 의뢰해 시가 90억원 상당의 256MB SD램 모듈을 넘겨받아 시중에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권씨 등으로부터 기판제조 기계 4대와 8억원 상당의 반도체 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이와 함께 권씨 등으로부터 130억원대의 메모리를 구입한 유통업자들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용산 전자상가내 반도체 유통업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가짜 스티커 붙은 비품 메모리 성능 큰 차이 없지만 AS 안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가 생산하는 SD램은 칩 형태인 컴포넌트와 이를 다층인쇄회로기판(PCB) 위에 여러개 장착한 SD모듈로 나뉜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이 컴포넌트를 구입해 모듈로 만들어 판매하면서 삼성전자 스티커를 부착, 마치 삼성전자가 만든 모듈인 것처럼 위조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만든 컴포넌트를 장착해 만든 모듈이므로 성능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삼성을 통해 AS를 받을 수는 없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용산 전자상가의 주변에는 이처럼 컴포넌트를 구입한 뒤 SD램 모듈로 만들어 판매하는 모듈링 전문업체들이 10여곳이 넘을 정도로 많았었다. 하지만 메모리 값이 추락하면서 모듈링에 따른 채산성이 악화되자 최근 들어서는 소수 업체만이 시황을 보아가며 소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시중에서는 삼성이나 하이닉스반도체가 직접 모듈화해 내놓은 제품이 정품으로 불리고 있으며 외부 모듈링 전문 업체에 의해 모듈화된 제품은 이른바 ‘비품’ 또는 ‘비짜’로 불리고 있다.
이처럼 컴포넌트를 구입해 모듈화해 판매하는 것은 컴포넌트의 단가가 모듈 단가보다 싸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컴포넌트를 수입해서 모듈화해 판매하면 기성 모듈만 유통시킬때보다 마진이 다소 좋다.
그동안 용산 등 전자상가에는 비품이 적지 않게 유통됐으나 이번처럼 문제가 확대된 적은 없었다. 이번 사건이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수백억원대의 대단위 물량에 삼성전자 스티커를 부착해 판매함으로써 상표를 도용했기 때문이다.
한편 반도체 유통업계에서는 삼성의 컴포넌트가 이처럼 대량으로 유통된 데 대해 지난 상반기에 해외로 수출한 물량 중 일부가 국내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영하기자 yh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