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보통신학계를 움직이는 사람들>(25)반도체학계

 18년전,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은 64k D램의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당시 64k D램 생산은 일본에 비해 몇년 늦은 것이었고 가격하락도 극심해 초기사업운영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후 세계 업체와 격차를 줄여나가면서 결국 우리나라가 세계 제 1의 D램 생산국가가 되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후 삼성전자의 64k D램 생산에 자극받은 금성반도체가 Z-80 마이크로 컴퓨터를 대량생산하고 현대전자가 반도체사업에 대해 집중투자하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은 본격적인 성장기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이런 성과들은 모두 60년대부터 시작된 반도체 분야의 교수, 연구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반도체 산업이 자리잡은 지금도 각 대학에서는 기초 인프라 확립과 인력양성을 위해 애쓰면서 D램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초기 반도체 연구는 미국 유학파와 국책 연구기관이 주도했으나 점차 국내 박사와 대학 연구소로 주도권이 넘겨졌다. 또 초기 소자 연구 일변도에서 부품·소재, 장비 등으로 연구영역이 넓어졌다. 전반적으로 반도체 연구개발의 저변이 넓어지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반도체가 만들어진 해는 지난 66년. 최초의 종합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반도체장치연구실장을 맡은 정만영 박사(75·은퇴)를 주축으로 무려 160여회의 실험 끝에 바이폴라 트랜지스터의 제조에 성공했다. 70년에 정원박사(타계), 민석기 박사(63·현 고려대 교수) 등은 실리콘 적층기술을 연구했으며 73년에는 김종국 박사 등이 최초로 발광다이오드(LED)를 제작하는 등 KIST를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됐다.

 국내 반도체 연구는 76년 국내 최초의 반도체국책연구기관인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가 생기면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KIST에서 집적회로를 연구하던 김만진 박사(65) 팀이 KIET로 소속을 옮기고 과학기술처의 각종 연구비를 지원받아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KIET는 86년 금성반도체에 연구시설을 매각할 때까지 이종덕 박사(57·현 서울대 교수)를 중심으로 일본에 앞서 원칩 8비트 마이크로 컴퓨터를 개발하고 32k 및 64k 롬을 개발해 미 아타리에 공급하는 등 초기 국내 반도체 산업의 발전에 밑거름이 됐다. 지금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으로 통합돼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설비투자가 많이 필요한 반도체 연구의 특성상 초기에는 대학에서의 연구가 쉽지 않았다.

 서울대를 거쳐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페어차일드반도체에서 근무했던 김충기 교수(59)는 초기부터 반도체 전문인력의 양성에 힘쓴 인물이다. 7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당시 한국과학원)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간단한 집적회로를 제조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수많은 후학들을 배출했다. KAIST 부원장을 거쳐 전자광학특화연구센터 소장으로 재임중이다.

 81년 정부의 국립대학 특성화 전략으로 경북대가 KIET의 기존 설비를 기증받으면서 손병기 교수(65)를 중심으로 대학에서의 연구가 본격화했다. 손 교수는 경북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 대학원에서 물리학과 박사과정을 거친 후 65년부터 줄곧 경북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74년부터 전자재료공학과에서 반도체교육을 시작했고 86년 반도체과를 신설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감이온 전장효과 트랜지스터(ISFET)를 개발하는 등 첨단 반도체 마이크로 센서의 연구에 집중한 손 교수는 지난 90년부터 경북대학교 내에 ‘센서기술연구소’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반도체 산업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발전했다. 대학도 기초기술개발과 인재양성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더욱 충실하게 됐다. 85년 이종덕 교수를 비롯한 각 대학의 교수들을 주축으로 설립된 반도체공동연구소(ISRC)가 대표적이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거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졸업한 후 경북대 전자공학과에서 조교수로 일하던 이종덕 교수(57)는 78년부터 83년까지 KIET에서 책임연구원 및 반도체연구부장을 역임했다. 83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과 부교수로 부임한 이 교수는 대학 자체적으로는 막대한 투자비가 소요되는 반도체 연구를 하기가 힘들다고 판단, 여러 대학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연구시설을 설치·운영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 ISRC를 탄생시켰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거쳐 매사추세츠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IBM 및 금성반도체연구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서울대 전기공학부 박영준 교수(49)는 각종 반도체연구사업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7대와 9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역임했을 뿐 아니라 차세대반도체연구개발사업단장, 시스템IC2010 사업단장 등 활발한 활동을 거쳐 지금은 하이닉스반도체 메모리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설계분야의 전문가인 연세대 이문기 교수(60)는 동 대학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오클라호마 대학을 거쳐 82년부터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 교수는 85년부터 3년간 과학기술처의 국책연구과제로 7개 대학이 참여한 다목적공동설계(MPC) 개발연구를 주관한 후 89년 연세대 내에 국내 최초의 ASIC 설계관련 연구소인 ‘아식설계공동연구소’를 설립했으며 현재 저전력프로세서의 재사용 설계에 대해 연구중이다.

 이문기 교수에 이어 연세대 김재석 교수(46)는 지난해부터 아식설계공동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연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김 교수는 미국 뉴욕 RPI(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AT&T 벨연구소(현 루슨트테크놀로지스)를 거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재직시절 CDMA 휴대전화용 핵심모뎀 칩을 책임 개발한 김 교수는 96년 모교로 돌아왔으며 98년에 ‘시스템IC2010’의 기획책임을 맡기도 했다.

 반도체설계인력양성센터(IDEC)는 아식설계공동연구소와 함께 국내 설계분야연구소의 대표격이다. 95년부터 IDEC를 이끌고 있는 KAIST의 경종민 교수(48)는 서울대를 거쳐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도미, 미국 벨연구소에서 반도체 소자 및 공정 모델링에 대해 연구했다. 일본, 독일 대학에서 객원교수로 활동중 ASIC 설계와 CAD에 대해 중점 연구한 경 교수는 아시아태평양설계자동화 학술회의(ASP-DAC) 대학반도체설계전 최우수상, 반도체설계자동화분야의 세계최고 학회인 DAC에서 최우수 논문상 및 국제컴퓨터설계학술대회(ICCD) 최우수논문상 등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IDEC 자료부에서 근무하다가 지난 4월 설립된 반도체설계자산연구센터(SIPAC)의 센터장으로 취임한 유회준 교수(40) 역시 서울대를 졸업하고 KAIST에서 박사과정을 밟은 후 벨연구소에서 근무한 경종민 교수의 직속후배다. 유 교수는 제 9차 반도체 학술대회 학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시스템IC2010 사업 램프(Ram Processor)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92년 전북대학교에 개설된 반도체물성연구소에서는 화합물반도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소장인 이형재 교수(59)는 오타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69년부터 전북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 교수는 70∼80년대에 갈륨비소의 결정성장, 물성연구 등을 통해 국내 화합물반도체 분야의 연구기반을 다졌으며 질화물반도체를 이용한 LED, LD 및 전기소자의 연구개발을 위해 ‘퀀테코’라는 벤처회사를 운영중이기도 하다.

 장비분야에서는 김광선 교수와 설용태 교수 등이 활발히 활동중이다.

 한국기술교육대학교의 반도체장비기술교육센터(SETEC)를 운영하고 있는 김광선 교수(47)는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거쳐 켄자스대학 기계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삼성항공 산업자동화사업본부장을 맡은 바 있으며 97년부터 SETEC에서 579개 업체, 5406명을 교육하는 성과를 올렸다. 현재 반도체장비설계를 위한 화학증착해석 등에 대해 중점연구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전기공학과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친 설용태 교수(43)는 KIET에서 정밀전자기기의 개발 등에 참여하면서 제조장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96년 호서대 내에 설립된 반도체제조장비 국산화연구센터(소장 황희융)의 실질적인 운영을 도맡아 하고 있다. 주요연구분야는 장비의 운영제어시스템과 챔버의 특성분석 등으로 리드프레임용 인라인 장비, 테스트 장비기술 및 RF 시스템 등 15건의 연구를 관련업계와 함께 수행했다. 최근에는 플라즈마프로세스챔버의 시물레이션 툴과 파티클 측정 분석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인하대 박세근 교수(48)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텍사스대학에서 반도체공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전자통신연구원, LG 반도체 MOS 기술부장,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환교수를 역임했다. 인하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던 95년 ‘반도체 및 박막기술연구소’를 창설한 박 교수는 현재 시스템IC2010 장비재료분야의 전문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인하대 이일항 교수(54)는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 예일대에서 응용물리학 박사과정을 마친 후 MEMC 반도체중앙연구소의 연구주임과 AT&T 벨연구소의 연구팀장으로 재직하면서 광통신 관련 광전자 연구와 실리콘 및 화합물 반도체 소재·소자 관련 연구를 한 후 돌아와 박세근 교수에 이어 ‘반도체 및 박막기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경북대 공정기술교육센터, 경남대 신소재 연구소, 고려대 반도체기술연구소, 대구대 기초과학연구소, 부산대 유전체 물성연구소, 서울대 신소재 공동연구소, 인하대 소재연구소, 포항공대 전자기술연구소 등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등 대학에서만 수천명의 연구인력이 반도체 산업의 기초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