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특정 다수의 거래당사자와 주주사가 참여한(일명 퍼블릭) e마켓이 아직 출현하지 못한 업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난 2년 가까이 국내 전통산업에도 e비즈니스가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업종에서 다양한 모델의 e마켓들이 쏟아졌기에 여전히 ‘e마켓 사각지대’인 이들 업종은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현재 퍼블릭 e마켓이 전무한 대표적인 업종은 자동차와 유통·물류. 이들 세 업종은 시장규모나 산업적 파급력, 그리고 현재 산업자원부가 지원하는 기업간(B2B) 시범사업의 대표산업인 점을 감안할 때 다소 의외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B2B 협업문화 부재나 불투명한 거래 관행, 열악한 정보화 수준 등 전통산업의 공통적인 장애물들을 제외하고도 이들 업종은 나름의 특수한 환경 탓에 e마켓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동차 업종의 경우 업계는 완성차 업체의 시장지배력이 워낙 강고한 점을 꼽는다. 대우차가 급속히 몰락한 지난 1년여간 국내 자동차 시장은 물론 B2B e마켓 환경도 현대기아차 주도의 사설(일명 프라이빗) e마켓으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심지어 자동차 부품·자재류를 대상으로 한 애프터마켓 B2B 사이트가 대기업·중소기업들의 갖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직 등장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자동차 e비즈니스 업체 관계자는 “정비소 등에 납품되는 부품·자재류 시장에서도 완성차 업체들이 사실상 유통권을 장악하고 있다”면서 “이들을 배제하고는 애프터마켓 시장진출을 상상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완성차업체의 품질승인을 받은, 소위 ‘순정부품’이라는 미명아래 이들은 대리점·정비소를 대상으로 많게는 30% 가까운 마진을 남긴다는 게 이 관계자의 귀띔이다.
자동차와 성격은 다르지만 유통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 지난 IMF 이후 다국적 유통기업의 시장진입 등으로 대대적인 시장구도 변동을 겪고 있는 유통산업은 최근 들어 시장경쟁이 더욱 격화되는 양상이다. 업계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생존을 건 싸움이 공동 e마켓 구축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이유로 보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 유통사들은 특히 경쟁사와의 정보공유 마인드가 극히 떨어진다”면서 “퍼블릭 e마켓의 전제조건인 협력관계가 나타날 수 없는 시장환경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전통산업 가운데 가장 앞서 공급망관리(SCM) 등 업계 공동 B2B사업을 전개한 선례도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e마켓은 서로 화합할 수 없는 대목인 셈이다.
물류업종은 보관·운송, 국내물류·수출입물류 등 종류와 목적별로 산업범위가 워낙 광범위한 탓에, 그동안 기업간 거래에 표준화된 업무절차가 없었다는 점이 꼽힌다. 그나마 국제 교역절차에 따르는 수출입물류는 나은 형편이지만, 국내 물류는 고객사나 제공하는 서비스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물류 B2B 시범사업 주관기관 관계자는 “기업간 업무절차 표준화는 B2B에 앞서 산업체질 개선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이라며 “이밖에 가격협상 관행이 극히 불투명한 점 등도 물류 e마켓 구현의 난제”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e마켓 활성화 여부가 산업내 e비즈니스 확산 수준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는 될 수 있다”며 “이들 3개 업종은 물론이고 아직 퍼블릭 e마켓이 존재하지 않은 업종들은 각종 시범사업 등의 과정에서 산업내 특수한 한계점들을 극복하려는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