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전날 밤.
한 남학생이 여자고등학교에 숨어든다. 목적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초콜릿을 몰래 전하는 것. 시간은 자정에 가까운 한밤중. 모두가 잠든 시간 ‘금남의 문’은 생각보다 쉽게 열린다.
그러나 안도의 시간은 잠깐. 남학생이 들어서자마자 출입문이 ‘철커덕’하고 잠겨버린다. 적막 속 무엇인가 움직인다. 분명 뭔가가 있다.
그때다. ‘악!…’ 외마디 비명소리가 고막을 찢는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납량특집 드라마의 한 장면도 떠오른다. 하지만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게임 속 얘기라면 믿겠는가.
보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국산 호러게임 2편이 잇따라 출시돼 화제다.
PC게임판 ‘여고괴담’인 ‘화이트데이’가 이달 말 발매되고 국산 최초의 호러게임 ‘제피’의 후속편 ‘제피2’도 곧 선보인다.
이들 국산 호러게임의 특징은 ‘공포의 신토불이’를 선언한 것.
그동안 호러게임의 주류를 이뤘던 외산 게임이 괴물 일색의 그래픽으로 공포효과를 자아냈다면 이들 게임은 ‘원혼’을 모티브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구미호’나 ‘전설의 고향’으로 대변되는 ‘한국적 공포담론’을 게임에서도 맛볼 수 있다.
손노리가 개발중인 ‘화이트데이’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도입한 호러게임. 여자고등학교에 흔히 전해오는 자살한 여고생들의 이야기가 게임 스토리로 등장한다.
학교에 갇힌 주인공이 적을 공격하기보다는 게임 내내 도망만 다녀야 한다는 것도 한국적 발상이다. 또 외산 호러게임의 경우 대부분 3인칭 시점을 채택하고 있는 반면 이 게임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것도 특징.
주인공은 깜깜한 교실과 복도 사이를 숨고 피해다니며 제시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안에 학교를 탈출하면 숨막히는 탈주극은 엔딩 동영상과 함께 막을 내린다.
그리곤엔터테인먼트가 제작중인 ‘제피2’는 이란성 쌍둥이에 얽힌 무섭고도
슬픈 사연을 게임화한 작품이다.
게임은 이란성 쌍둥이를 임신한 한 여성이 극도로 쇠약해져 쌍둥이 중 한사람만 선택하면서 시작된다. 결국 제피의 누나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원혼으로 떠돌며 무시무시한 연쇄 살인을 자행한다.
주인공인 제피의 임무는 누나의 영혼과 싸우며 마을을 구하는 것이다. 정통 호러게임과 달리 퍼즐, 체스, 그림맞추기 등 미니게임이 삽입된 것은 이 게임의 독특한 특징이다. 공포게임치고 잔인한 장면이 거의 없는 것도 색다르다.
호러게임의 묘미는 게이머가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 단지 수동적으로 보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짜릿한 공포를 체험할 수 있다.
올 여름, 생각만해도 으스스한 국산 공포게임으로 더위를 물리치는 건 어떨까.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