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완의 애니월드>(15)OVA의 새로운 시장성

애니메이션을 기획할 때 대부분의 미디어 창구는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는 장편 애니메이션과 TV 방영을 목표로 하는 20분짜리 중편 애니메이션을 제작의 기본 단위로 한다. 그래서 국내에서 기획·창작 애니메이션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극장과 TV 시장을 전제로 사업설명회를 개최하고 자본을 모은다.

 일본의 경우 대자본이 투입되는 극장용 장편과 TV 시리즈 외에도 ‘OVA(Original Video Animation)’라는 독특한 장르가 발달돼 있다. 대개 극장 개봉이 어렵고 TV 방영도 쉽지 않은 포르노에 가까운 하드코어나 잔인함을 기반으로 하는 하드고어식의 성인용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이 장르의 주종을 이룬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경우 월트디즈니와 드림웍스 등 미국 제작사가 한 편에 투자하는 제작비가 최근 1000억원까지 상승했고, 일본도 300억원 이상의 대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다음달 개봉 예정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천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10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극장용 장편을 기획·제작할 때 최소 20억원에서 최대 150억원까지의 투자되고 있다. 이처럼 극장용 장편의 경우 투자의 위험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역시 30분물 한편 제작비가 6000만원에서 2억까지 투자되고 있다. 13부작을 기본제작물량으로 할 경우에도 약 10억원에서 30억원의 대자본이 투입된다. 결국 3개월 방영분 제작에 수십억원이 투입되는 TV 시리즈 애니메이션까지 살펴볼 때 이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기본인 ‘고위험도 대비 고수익배당(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이론을 실감나게 한다.

 OVA는 바로 이런 고투자 시장의 틈새를 겨냥한 차별적인 투자모델이다. ‘저위험도 대비 저 수익배당(low risk low return)’을 원칙으로 최소 6000만원에서 최대 5억원 정도의 제작비를 투입, 비디오용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이는 기존의 비디오 대여점과 비디오·DVD 수집가들을 대상으로 판매수익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호텔·여관 등 숙박시설에 설치된 성인용 케이블TV를 통한 OVA 수익도 적지 않아 무난히 손익분기점에 도달한다.

 이런 일본식 OVA가 국내에서는 시장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일본은 OVA 마니아들이 일정한 시장 규모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유명감독이나 인기작품은 OVA 출시만으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데 반해 국내에는 그런 시장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말 원작만화의 인기를 기반으로 여러 애니메이터들의 옴니버스식 제작 형식을 새롭게 시도한 ‘누들누드’가 성공함으로써 국내 OVA 시장의 가능성은 조금씩 제시되기 시작했다. 연이어 ‘고인돌’까지 시장에서 수익을 발생시키자 본격적인 OVA 제작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새로운 틈새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기회가 아닐까 싶다. 다만 장르적 형식이 에로티시즘에 기댄 성인물에 국한돼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