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알쏭달쏭한 `천적관계`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지난해 피파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KTF 매직엔스 이지훈은 무려 32승이라는 기록적인 성적을 거두며 피파부문을 석권했다. 지난해 기록한 전체 승률이 9할을 넘을 정도로 이지훈의 기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피파의 지존으로 군림했던 이지훈도 최연소 프로게이머인 KTB 퓨처스 이형주만 만나면 힘없이 패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지훈은 32승2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형주에게 두번이나 무릎을 꿇었던 것.

 올해들어 이형주에게 연승하며 지난해의 징크스에서 벗어나는 듯했던 이지훈은 새로운 천적을 만나고 말았다. 새로운 이지훈 킬러로 부상한 선수는 삼성전자 칸의 신예 박윤서.

 이지훈은 지난 12차전까지 13승4패를 기록하며 개인승률 1위를 달리고 있으나 4패 중 박윤서에게만 3패를 당했다. 올 시즌 혜성같이 나타난 박윤서는 이지훈을 번번이 꺾으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박윤서에게도 천적이 있다. 올 시즌 13승5패로 이지훈에 이어 개인승률 2위를 기록하는 박윤서지만 이지훈의 제자로 알려진 KTF 매직엔스 이봉열에게는 유달리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즌 초반 이지훈을 연거푸 무너뜨리며 연승가도를 달리던 박윤서는 이봉열에게 시즌 3전 전패를 당하며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하지만 기세를 올리던 이봉열도 중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KTB 퓨처스 이형주에게는 1승4패를 당하는 등 상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게이머들 간에 물고 물리는 복잡한 우열관계는 각 선수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무엇보다 심리적인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어떤 장르보다 머리를 많이 쓰고 임기응변에 능해야 하는 분야다 보니 심리전에서 위축되면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지훈은 “지난해에는 이형주만 만나면 경기가 풀리지 않더니 올해에는 박윤서만 만나면 경기가 어렵게 꼬이고 있다”며 “경기시작 전 상대선수에게 심리적으로 압도당하면 그날 경기는 90% 패하고 만다”고 털어놓았다.

 이와같은 천적관계는 스타크래프트 여성부에서도 마찬가지.

 지난해 KIGL 여성부 전 대회를 석권하며 명실상부한 스타크 여왕으로 등극했던 삼성전자 칸 김인경은 KTF 매직엔스 이은경에게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2패만을 기록했다.

 이에따라 절치부심 이은경에 대한 분석에 들어간 김인경은 올 시즌 4승1패라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며 천적관계에서 깔끔하게 벗어났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지난해 완전 우위를 보였던 KTB 퓨처스 박윤정에게 잇따라 무릎을 꿇으며 새로운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 테란의 최고수인 박윤정은 김인경을 연파하며 스타크 여성부 개인승률 2위를 달리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하지만 박윤정도 게임아이 김가을 앞에 서면 힘을 못 쓴다. 올 시즌 1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두 선수는 중요한 두번의 대결을 펼쳤으나 결과는 김가을의 2승으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이에대해 배틀탑의 게임리그 담당자인 정환렬씨는 “심리적으로 제압당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다 보면 경기 중 발생하는 변수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며 “기량만큼이나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이 게이머에게 필수요소”라고 지적했다.

  <김태훈기자 taeh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