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움직이는 거야. 선에 묶여 있는 인터넷은 저리가라.’
이동전화망을 기반으로 한 무선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면서 모티즌(motizen)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전철, 길거리, 도서관, 카페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휴대폰의 작은 자판을 두드려 엄지족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이들 모티즌에게 3차원 공간의 틀 안에 갖힌 PC와 네트워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n(network)세대가 아닌 m(movile)세대는 노는 물도 다르다. 이동전화와 PDA를 들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든지 움직이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티즌에게 스타크래프트의 배틀넷이나 리니지, 포트리스2는 더 이상 흥미거리가 아니다. 내용이 방대하고 아무리 게임성이 뛰어나도 PC와 네트워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래픽이 화려하지도 않고 스토리도 상대적으로 빈약하지만 휴대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이 제격이다.
PC방에서 리니지나 스타크래프트 배틀넷에 빠져 밤을 세운 n세대는 모티즌을 이해할 수 없다. 사이버 세상에서 말 그대로 새로 진화한 종족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n세대의 대표적인 오락거리인 온라인 게임과 PC 게임의 대표주자들도 모바일 게임 분야에서만큼은 맥을 못추고 있다. 대신에 회사를 설립한 지 2년여도 되지 않는 신생 벤처기업들이 이 분야의 맹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스스로 m세대임을 자처하는 20대 CEO들이 이끌고 있는 회사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모바일 게임의 선두주자인 컴투스(대표 박지영)가 그 대표적인 예. 박지영 사장(27)은 고려대 컴퓨터학과 3학년 때인 96년 회사를 창업했으며 지난 99년 8월 국내에서 이동전화용 게임을 처음 개발한 장본인이다.
“모바일 게임은 네트워크 및 시스템 환경에서 기존의 온라인 게임과는 다릅니다. 특히 사용자 측면에서 기존의 온라인 게임이 30∼40대의 장년까지 포괄하고 있지만 모바일 게임은 스스로 엄지족임을 자처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m세대들이 주 사용층이라는 점에서 이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가발한 생각을 게임 속에 얼마나 담아낼 수 있느냐가 성공의 키포인트입니다.”
기존 세대의 고정된 생각으로는 모바일 게임의 주 사용층인 모티즌의 감각을 따라잡을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박 사장 자신이 20대 모티즌으로서의 감각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은 잇따라 히트했다. 특히 롤플레잉 게임인 ‘춘추 열국지’, 복합 장르 게임인 ‘세이트페노아’ 등은 하루 평균 히트수가 30만회를 상회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절대적인 사용자 수에서 뒤지지만 무선 인터넷수가 유선 인터넷 사용자의 7분의 1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가히 ‘리니지’에 버금가는 인기를 끌고 있는 셈이다. 현재 3개 이동통신 사업자를 통해 80여종에 달하는 모바일 게임을 서비스하는 등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바 게임 분야의 ‘넘버 1’으로 꼽히고 있는 게임빌(대표 송병준) 역시 20대 모티즌들이 ‘신세대 감각에 맞는 게임은 신세대가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설립한 회사다. 서울대 창업 동아리 ‘벤처’의 초대 회장을 지낸 송병준 사장(26)을 비롯해 서울대 공대 출신의 게임광들이 2000년 1월 창업한 게임빌은 전체 직원 24명이 모두 20대다. 직원 평균 연령이 24세인 만큼 26세인 송 사장은 사내에서 원로에 해당한다. “자기만의 것을 갖고 싶어하면서도 변덕스러울 정도로 고정된 것을 싫어하는 신세대의 특성을 볼 때 모바일 게임이 뜰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더욱이 신세대의 변덕과 기술 변화의 속도를 감안하면 자바가 가장 적합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바에 대한 기술력에 스스로 게임광임을 자처하는 직원들의 m세대적인 감각이 더해진 작품들은 대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하스트워리어’ ‘펭귄크래프트’ ‘2002 월드컵’ 등을 포함해 10종의 모바일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게임빌은 온라인 게임 분야를 포함해 올해 3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컴투스와 게임빌에는 못 미치지지만 최근들어 모바일 게임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이매그넷(대표 권선주)과 포케스페이스(대표 김도식) 역시 20대 모티즌들의 젊은 회사다. 개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앤츠’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이매그넷의 창업자는 올해 23세인 권선주씨다. 권 사장은 고려대 미술교육학과를 휴학하고 2000년 7월 이매그넷을 창업, 모바일 게임 ‘앤츠’를 개발했다. 이 게임은 현재 017, 019 서비스망의 모바일 게임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이버 애완동물을 키우는 육성 게임의 요소에 전략 시뮬레이션 요소를 가미했고 게임의 진행이 빠를 뿐 아니라 귀여우면서도 다소 촌스러운 개미 캐릭터를 등장시킨 이 게임은 가장 m세대다운 게임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최초로 휴대폰을 이용한 그래픽 게임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던 포켓스페이스 역시 20대 모티즌이 주축이 된 회사다. 98년 단국대 고분자공학과를 졸업한 김 도식 사장(27)이 2000년 3월 창업한 이 회사는 지난 4월 그래픽 기반의 야구 게임인 ‘포켓 프로야구’를 선보였다. 기존의 숫자, 문자 위주의 게임과는 달리 그래픽이 지원되는 이 게임은 서비스 개시 한달 만에 유료 이용자 2만명을 돌파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사장을 포함해 직원의 대부분이 20대인 이들 회사는 사내 문화도 독특하다. 컴투스의 경우 회식이 끝나면 PC방에 가서 즉석 게임 대회를 열고, 업무 시간이나 회의시간 도중에도 짬을 내 휴대폰으로 게임을 즐기는 장면은 다반사다. 심지어는 화장실에서 모바일 게임에 빠져 장시간 자리를 독차지해 뒷사람에게 선의의 피해를 주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특히 이매그넷의 회의 문화는 독특하다. 일명 ‘스낵 타임’이라는 불리는 회의 시간에는 이 회사만의 독특한 장면이 연출된다. 주로 아이디어 스토밍을 위한 회의의 경우 각자가 좋아하는 과자를 들고 와서 회의를 진행하며 굳이 자리에 앉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한다. 캔미팅이 기존의 회의 격식을 일정 수준 파괴했다면 이 회사의 스낵 타임은 브레인 스토밍이라는 회의 목적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격식이나 제약이 없다.
‘무엇이든 재미있어야 한다’는 신세대 집단다운 기업 문화나 이같은 ‘움직이는 회의’가 모바일 게임의 수작을 만들어 내는 원천임이 분명하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