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미국의 노런 부시넬이 친구 테드 다브네이와 500달러를 출자해 설립한 ‘아타리’는 ‘퐁’(국내엔 테니스게임으로 알려짐)이라는 역사적인 게임을 출시해 일주일에 200달러씩을 벌어들이며 당시로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블록격파게임을 연달아 히트시킨 아타리는 그러나 복사품의 난립으로 경영난을 겪게 되고 결국 워너커뮤니케이션스에 2800만달러에 팔린다.
여유자금을 갖게 된 아타리는 77년 전설적인 가정용 게임기(아타리 2600)를 발매하는데 이 게임기에는 모토로라의 6800 칩에서 어드레스 버스를 없앤 저가형 8비트 6507이 쓰였다.
아타리 이후 시장을 장악한 닌텐도의 패미콤에도 모토로라의 6502 프로세서가 사용됐으며 16비트시대에도 기존 프로세서 호환 상위기종이 채택되는 등 초기 게임기에는 자일로그·모토로라·ARM 등에서 만든 저가형 프로세서가 많이 채택됐다.
95년 세가에서 히타치의 32비트 RISC 칩을 두개 사용한 세가세턴을 출시하고 소니에서 밉스의 32비트 RISC R3000S 칩을 장착한 플레이스테이션을 내놓으면서 게임기용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성능경쟁이 본격화한다.
당시 PC시장에는 진정한 32비트로 볼 수 없었던 펜티엄 프로급 CPU가 등장한 시기였으며 96년 밉스의 64비트 R4300 RISC CPU를 장착한 닌텐도64가 출시되면서 게임기의 성능은 PC를 훌쩍 뛰어넘게 된다.
그러나 인텔이 펜티엄Ⅱ, 펜티엄Ⅱ MMX, 펜티엄Ⅲ를 잇따라 출시하면서 PC의 성능은 게임기의 그것을 다시 추월하게 되고 심지어 플레이스테이션·세가세턴·닌텐도64 등 한때 고성능 게임기로 각광받았던 게임기를 PC에서 실시간 에뮬레이션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지난해 3월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의 플레이스테이션2가 출시되면서 게임기용 CPU는 다시금 한단계 도약을 한다. 소니와 도시바가 함께 개발한 ‘이모션엔진’이라는 CPU를 장착하고 나온 이 괴물머신은 데이터전송통로나 레지스터를 비롯한 모든 구조가 128비트로 설계된 최초의 진정한 128비트 콘솔로 500밉스(MIPS·초당 100만 명령연산)의 속도를 자랑한다. 게다가 뛰어난 병렬연결구조를 통해 실수처리장치(FPU)나 벡터유니트(VU)같은 보조연산장치들을 이모션엔진과 함께 사용함으로써 엄청난 양의 데이터처리능력을 자랑한다.
실제로 이 기계가 발매됐을 때 컴퓨터그래픽 영상처리능력 등이 너무 뛰어나 미사일 유도장치 부품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국외반출을 제한했을 정도였다니 그 성능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얼마전 SCE는 ‘이모션엔진’을 다른 업체에 라이선스해 주고 세트톱박스를 비롯한 각종 제품에 채택시켜 표준으로 만들어 나감과 동시에 IBM 및 도시바와 함께 ‘이모션엔진’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고성능 광대역 CPU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한 게임기사업을 넘어 CPU사업에까지 진출하겠다는 야망을 내비친 것이다.
소니의 CPU개발과 함께 주목할 점은 그동안 게임기시장에 별 관심을 두지 않던 인텔과 IBM의 게임기용 프로세서 시장 본격 참여다.
인텔은 올해말 출시예정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신형게임기 X박스에 자사의 주력 733㎒ 펜티엄Ⅲ를 채택했으며 IBM 역시 올해말 출시예정인 닌텐도의 게임큐브에 자사의 구리칩 기술을 적용한 파워PC기반의 초고속 405㎒ 게코 프로세서를 장착했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엄청난 성공을 눈으로 확인한 반도체 공룡업체들이 게임기산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년부터 플레이스테이션2·게임큐브·X박스를 앞세워 펼쳐질 소니·인텔·IBM 3사의 치열한 게임기용 프로세서 시장 쟁탈전에 관심이 집중된다.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