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프로세서 30년>한국형 CPU개발 역사

 ‘한국의 인텔은 불가능한가’

 전세계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인텔에 도전해 자체 기술력으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들겠다는 국내 업체들의 노력은 비록 외형적으로 큰 성과물을 내놓진 못했지만 상당수 진행돼 왔다.

 특히 90년대 들어 정부가 비메모리 반도체의 핵심인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국산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로 상공부(현 산업자원부), 체신부(현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등을 내세워 산·학·연 연계로 각종 국책과제를 추진하면서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었다.

 가장 초창기의 프로세서에 대한 연구는 상공부가 90년 공업기반기술과제로 32비트 명령어축약형(RISC)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을 연세대 주문형반도체(ASIC) 설계연구소 이문기 교수팀과 함께 시작하면서 이뤄졌다.

 이문기 교수는 당시 선사의 스파크 칩과 호환할 수 있는 칩 개발을 진행, 고성능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알고리듬과 설계 체계에 대한 노하우를 쌓고 3년여만에 메모리관리기와 캐시제어기를 내장한 프로세서를 내놓기도 했다.

 또 당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경종민 교수와 맹승렬 교수는 명령어복합형(CISC)방식의 독자적인 아키텍처 구조에 컴파일러와 디버거, 소프트웨어까지 갖춘 ‘그림돌’이라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했다.

 당시 경 교수팀은 노래반주기업체와 이를 탑재한 노래방시스템을 만들어 상용화를 시도했지만 업체 측 사정으로 제대로 판매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경 교수는 KAIST 학생들과 함께 체신부 제조업 경쟁력강화과제의 일환으로 386, 387, 486 등 인텔 호환칩을 4년여 동안 개발했으며 실제 작동이 되는 386 호환칩 개발에도 성공했다.

 90년대 중반부터는 국내 반도체업체들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이뤄져 자체 마이크로프로세서 코어 기술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94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는 정몽헌 회장의 주도로 학계, 연구기관과 펜티엄 호환칩을 개발하기로 하고 수십억원대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기도 했다. 또 미국의 신생 마이크로프로세서업체에도 기술이전을 전제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FPGA 형태로 개발된 펜티엄 호환칩은 실제 운용체계의 부팅은 가능했지만 버그 때문에 실제 칩으로 제작하지는 못했고 외국 업체와의 제휴도 기술력 미비로 불발로 끝났다.

 당시 LG반도체(현 하이닉스반도체)와 LG전자도 디지털신호처리기(DSP)를 기반으로 TV·세트톱박스 등 각종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칩 개발에 착수했다.

 양사는 2년 후인 96년 16비트 고정소수점 방식의 DSP칩과 메타코어, 소프트웨어 개발에 성공하고 이를 임베디드 DSP코어 형태로 각종 응용 제품개발에 적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국내 업체들과 학계, 연구기관, 정부가 공히 깨닫게 된 것은 독자적인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개발이, 개발하더라도 상용화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미 인텔이 범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독식하고 있었고 저성능 마이크로컨트롤러는 채산성이 맞지 않다는 현실을 인식한 것이다.

 결국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대한 노하우를 쌓는 데 만족해야만 했던 국내 연구진과 정부는 한국의 시스템기술과 공정기술을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 개척으로 눈을 돌린다.

 98년부터 산자부와 과기부가 공동 추진한 시스템IC 2010사업에서는 보다 세분화되고 구체적인 기술 접근으로 틈새 경쟁력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올해로 3년째 접어들고 있는 시스템IC 2010사업을 통해 내장형(임베디드) 중앙처리장치(CPU), 메모리·로직 통합프로세서(EML), 통신용 및 산업용 프로세서 등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임베디드 CPU 분야에서는 삼성전자가 32비트 캄(Calm) RISC프로세서 코어를 개발, 저전력 휴대형 기기를 대상으로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으며 에이디칩스는 16, 32비트 확장명령어구조(EISC) 칩을 개발하고 IP라이선싱까지 추진하고 있다.

 또 KAIST의 유회준 교수팀도 메모리와 로직을 하나로 통합한 신개념의 EML기술을 개발해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향후 국내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은 임베디드 형태로 신개념의 시스템온칩(SoC) 개발에 집중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스템IC 전문위원인 김재석 연세대 기계전기전자공학부장은 “한국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연구 개발은 시스템 기술과 반도체 공정 기술을 기반으로 한 SoC 형태로 맞춰져야 한다”면서 “향후 정부의 지원도 이같은 방향설정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적재산(IP) 데이터베이스(DB)화하고 유통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쪽으로 맞춰질 것이다”고 말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