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프로세서 부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별들의 전쟁은 주기판의 가장 핵심부품인 칩세트 부문으로까지 이어진다.
과거 486시절만 하더라도 UMC, OPTi, VIA테크놀로지와 같은 칩세트 전문업체들이 칩세트 개발을 주도하면서 시장을 장악해왔다. 하지만 인텔이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얻은 명성을 등에 업고 칩세트 시장에 뛰어들면서 판도변화가 일어났다.
인텔이 펜티엄용 430FX 칩세트, 일명 트라이톤Ⅰ칩세트를 선보이면서 칩세트 업계에 ‘메이드 인 인텔(made in intel)’ 바람을 일으켰고 빠르게 시장을 장악해 나가자 기존 UMC나 OPTi 같은 회사들은 주기판 칩세트에서 손을 뗐다.
인텔은 FPRAM과 EDORAM을 지원하는 430FX 칩세트를 시작으로 일명 트라이톤Ⅱ의 430HX(기업용)와 430VX(가정용)를 선보였고 뒤이어 펜티엄MMX를 지원하는 트라이톤Ⅲ인 430TX를 내놓아 UDMA/33기술과 SDRAM을 공식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이후 인텔은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에 가장 최적화된 칩세트는 인텔 칩세트’라는 인식을 심어가며 펜티엄프로용 440FX, 펜티엄Ⅱ용 440LX, 펜티엄Ⅱ 350㎒ 이상을 지원하는 440BX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칩세트 업계의 대부로 군림해오고 있다.
멀티미디어 통합시대에 접어든 이후 440BX의 후속작으로 그래픽 및 사운드 기능을 통합한 i810(보급형), i820(고급형)을 잇따라 출시했고 지금은 860, 870 등의 800 시리즈 칩세트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다크호스로 부상해 전세계 칩세트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인텔에 맞서 VIA는 AMD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지원하는 강력한 라이벌로 활동해왔다. 대만의 VIA는 그동안 인텔에 대응해 AMD 및 사이릭스용 칩세트를 주력으로 생산해오다 전세계 CPU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인텔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인텔과 동반자적인 관계를 구축, 인텔호환 칩세트인 아폴로 시리즈를 생산해 시장에서 성공하게 된다.
VIA의 아폴로프로133은 인텔의 440BX와 호환되는 칩세트로 PC133 메모리와 FSB 133㎒ CPU 지원, UDMA/66 지원이 가능해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VIA는 이밖에도 인텔의 펜티엄/펜티엄MMX, AMD의 K5/K6/K6-Ⅲ, 사이릭스의 6x86/MⅡ 등의 CPU를 지원하는 MVP3 칩세트를 내놓아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으며 특히 K6계열의 CPU에서 거의 독보적인 칩세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에도 VIA는 AMD 애슬론 전용 칩세트인 KX133을 내놓아 차세대 CPU용 칩세트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펜티엄4용 칩세트인 P4X266를 준비중이며 인텔의 라이선스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또 VIA는 AMD의 애슬론4와 듀론을 지원하면서 S3의 세비지4 그래픽 코어를 통합한 KN133 칩세트를 비롯해 인텔의 펜티엄Ⅲ 투알라틴을 지원하는 소켓 370용 칩세트인 아폴로프로266T, 아폴로프로133T, 프로세비지PL133T, 아폴로PLX133T 등을 최근 선보인 바 있다.
인텔이 그러했듯 CPU 제조사가 주기판 칩세트를 생산하는 것은 자사 CPU의 시장확대 측면에서 필연적인 흐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VIA가 자신있게 99년 사이릭스를 인수한 것은 칩세트 분야에서 나름대로 확고한 위치를 굳히고 있기 때문에 훗날 CPU와 칩세트를 연계할 경우 막대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포석에서다.
AMD가 칩세트 시장에 관심을 두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AMD는 애슬론 CPU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AMD750 칩세트를 함께 선보이게 된다. 이는 당시 애슬론용 칩세트를 공급하기로 돼 있던 VIA가 대만의 지진피해로 출시지연이 불가피하게 되자 취했던 조치로 AMD는 일명 아이언게이트의 AMD750 칩세트를 서둘러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AMD750칩세트는 AGP 2X와 PC100 메모리를 지원했으나 얼마 후 VIA가 지진피해를 극복, AGP 4X와 PC133 메모리를 지원하는 KX133칩세트를 선보이면서 단명하고 말았다.
AMD는 그 이후로도 칩세트에 대한 미련이 남아 2000년 10월 266㎒ FSB를 지원하는 AMD760칩세트를 선보였고 대만의 MSI, FIC, 기가바이트, 아수스 등의 주기판 제조업체들이 이를 채택한 주기판을 선보였다. AMD는 인텔이나 VIA처럼 칩세트 사업을 좀처럼 확대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AMD의 지지세력이었던 대만의 칩세트 업체와 경쟁하지 않는 편이 더 유리하기 때문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산업계의 현실을 고려할 때 AMD가 칩세트 사업을 본격화할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대만의 칩세트 업체인 ALI(Acer Laboratories Inc.)는 펜티엄Ⅱ 시대 이후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하다가 지난해 세계 최초로 DDR 지원 칩세트인 MAGiK1을 출시하면서 부활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회사는 매직1(MAGiK1)의 이름으로 M1647(데스크톱)과 M1646M(모바일PC)을 선보인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펜티엄Ⅲ, AGP 4X를 지원하는 DDR/SDR 칩세트인 알라딘프로5T의 시제품을 내놓았다. 이후 모바일 애슬론/듀론용 통합칩세트 사이버매직1을 개발한 데 이어 트라이던트의 블래이드3D 그래픽 코어를 통합하고 인텔의 투알라틴을 지원하는 사이버알라딘T를 개발, 7월께 추가로 선보여 ALI의 건재함을 과시한다는 계획이다.
또다른 칩세트 제조업체인 SiS(Silicon Integrated Systems)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모으진 못했지만 기존 펜티엄Ⅲ용 SiS630 칩세트와 애슬론용 SiS730S의 후속작으로 DDR 메모리지원용 칩세트인 SiS635와 SiS735 등을 개발, 국내는 물론 대만 주기판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SiS의 강점은 노스브리지와 사우스브리지를 한 칩에 구현하는 통합칩세트 업체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SiS630과 SiS730S를 비롯해 K6-Ⅲ 지원 SiS540 칩세트 모두를 통합 칩세트 형태로 출시했다.
올 상반기 출시한 SiS635 칩은 싱글칩 DDR 솔루션으로 펜티엄Ⅲ, 투알라틴, 셀러론 프로세서를 지원하며 SiS735 칩세트 역시 DDR 솔루션으로 소켓A 프로세서를 지원한다. 현재 SiS635 칩세트는 ECS, MSI, PC칩스, 제트웨이 등의 주기판 업체가 채택했고 SiS735 칩세트는 체인텍과 MSI 등이 채택하고 있다.
SiS의 DDR 칩세트는 앞선 스펙을 지원하면서도 단일칩 구성이 가능해져 주기판 제조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공한다. 특히 노스·사우스브리지간의 데이터버스를 한 다이내부에서 구현하므로 기존 주기판 병목현상의 주범 중 하나인 두 브리지간의 대역폭을 월등하게 높일 수 있다.
이같은 칩세트 업계의 통합화 추세, 즉 SoC(System on a Chip)는 최근들어 보편화하고 있으며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SiS 외에도 VIA가 자가 노스브리지에 그래픽코어를 통합했고 이를 위해 S3의 그래픽칩 부문을 인수한 바 있다. 인텔 역시 그래픽 코어를 내장한 825E, 810E 등을 출시한 데 이어 보급형 칩세트 시장을 중심으로 그래픽 코어 통합 칩세트를 지속적으로 개발,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과거 ALI와 그래픽 코어 내장 통합 칩세트인 알라딘TNT2를 공동으로 개발한 경험이 있는 그래픽 칩세트 전문업체 엔비디아 역시 ALI와의 결별 이후 그래픽 코어 내장 통합 주기판 칩세트를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용어설명-노스브리지와 사우스브리지
대개 주기판 칩세트는 두 개로 구성돼 있는데 CPU 소켓 옆에 있는 정사각형 칩세트가 노스브리지(north bridge)로 CPU, 메모리, 그래픽카드 사이의 데이터 흐름과 사우스브리지의 제어를 담당한다.
노스브리지는 주기판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하므로 일반적으로 칩세트의 이름은 이 노스브리지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
노스브리지보다 작은 정사각형 칩세트가 사우스브리지(south bridge)로 슬롯(확장슬롯 중에서 그래픽카드가 장착된 슬롯을 제외한 모든 슬롯)에 장착되는 PCI 장치와 하드디스크드라이브, USB포트 등과 같은 입출력 장치들의 데이터 흐름을 관리한다. 노스브리지와 사우스브리지 모두 주기판에 장착된 장치들을 관리하는 칩세트지만 노스브리지가 관리하는 장치들이 컴퓨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장치므로 사우스브리지의 역할보다 노스브리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때문에 노스브리지에 방열판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