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비즈니스에도 선택과 집중이 있다.’
최근 굴뚝기업들의 e비즈니스 도입이 구체화되고 있는 가운데 확고한 오프라인 수익구조를 기반으로 선택적 e비즈니스를 추진하는 산업군이 있어 무분별한 e비즈 도입보다는 자신들의 산업구조에 맞는 ‘맞춤 e비즈’의 표본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 굴뚝산업 가운데 나름대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부하는 광고대행업계가 바로 그 주인공.
제일기획, LG애드, 오리콤, 대홍기획 등으로 대표되는 광고대행사들은 사실 이렇다 할 사내 e비즈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 않다.
업계 수위인 제일기획이 전사적자원관리(ERP) 개념의 전사적 경영정보시스템(MIS)을 통해 재무·회계관리 및 신문사, 방송사 등 매체사의 광고게재를 확인하는 부킹관리를 전산화했고 롯데 계열의 대홍기획이 기구축된 MIS와 이달말 완료되는 지식경영시스템(KMS)을 e비즈 인프라의 핵심으로 주장하고 있다. 금강기획은 고객관계관리(CRM)의 기초단계인 ‘RGB 시스템’을 통해 광고주에게 데이터베이스(DB)와 지식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들 상위 4개사 가운데 실제 CRM, ERP 등을 구축, 경영에 활용하는 업체는 단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별로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에 두려움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로 ‘산업구조’를 꼽는다. 광고업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온라인을 통한 거래가 아니라 고객층과의 잦은 미팅을 통한 아이디어 창출이며 이를 화면 또는 지면에 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고객사들이 ‘불특정다수’기 때문에 CRM의 ‘투자대비 기대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논리다. 단지 수주를 하면 이에 따른 타깃선정 등 시장조사를 거쳐 매력적인 광고를 제작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광고계가 경기의 영향에 가장 민감하다는 것도 선택적인 e비즈를 선호하는 요소 중 하나다. 실제로 지난 IMF의 혹한 속에서 가장 타격을 입은 업종이 바로 광고업이었다. 당시 국내기업들은 재무구조 개선과 인원감축의 구조조정 속에서 먼저 단행한 것이 광고비 절감이었다. 때문에 광고대행사들은 전체 매출의 40% 이상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e비즈 과잉투자는 피한다는 게 업계 전반의 인식이다.
이에 따라 광고업계는 필수가 아닌 선택적 요소로, 경영 효율화에 필요하다면 도입하는 것을 기본으로 e비즈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제일기획(대표 배종열)은 일단 광고업에 CRM은 필요없다는 주장이다. 취급업종이 수십종에 달하는 광고업에서 최종 고객인 시청자들의 정보를 DB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지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 매체 선호도, 상품 반응 등의 인지도 조사인 ‘전국 소비자조사’를 업계 유일하게 실시, 경영에 반영시키고 있다. 제일기획의 CRM은 결국 오프라인에서의 소비자 조사인 셈이다.
이 회사는 또 이미 10년 전에 구축한 전략모델 시뮬레이션 시스템 ‘Map’을 통해 소비자의 특성을 분석, 모델화하는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매체환경과 시장(수요자)의 행동 및 특성에 맞춰 광고전략을 수립하는 데 활용된다. ERP를 대체하는 전사적 MIS시스템은 ‘Cats 2000’인데 통합된 경영정보(재무·회계관리)를 제공하고 있다.
제일기획이 ERP를 구축하지 않는 이유는 의외로 명쾌하다. 정보전력팀 노재환 국장은 “광고업체는 매출이 월말에 한꺼번에 집계됨에 따라 ERP 패키지의 특성인 리얼타임 집계가 불가능하다”면서 ERP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LG애드는 최근 사내 인터넷을 기가비트 솔루션으로 전환시켰다. 올 1월부터는 지식경영팀에 IT기획파트를 만들어 CRM, SCM, ERP 등의 e비즈 인프라 구축을 신중히 검토중이지만 활용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영업, 인사, 회계 등을 하나로 묶은 ‘지식경영’ 시스템을 개발, 영업에 적용시킬 계획이다.
대홍기획은 MIS 차원의 광고주 관리를 통해 CRM을 대신하고 있으며 금강기획은 내부 지식 인프라인 RGB 시스템을 통해 광고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명승욱기자 swmay@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