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IT자회사 설립이 난항을 겪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대형 은행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된 IT자회사 설립 논의가 1년이 넘도록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
최근까지 IT자회사 설립이 논의 또는 발표됐던 곳은 우리금융그룹·신한금융그룹·하나은행·한미은행, 국민은행 등이다. 하지만 현재 어느 곳도 구체적인 계획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논의만 무성한 상태다.
한빛·평화·광주·경남 등 4개 시중은행을 아우르는 우리금융은 지난 5월 IT자회사 설립 계획을 발표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당시 상반기내 설립을 목표로 했지만 경남·광주은행 등의 자회사가 통합안에 반발하고 있고 각 은행간의 시스템통합(SI) 또한 만만치 않아 연내 출범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는 9월 신한은행·증권·캐피털 등을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 출범을 준비하고 있는 신한 계열의 금융사들도 마찬가지다.
신한측은 9월 1일 지주회사를 출범하고 10일에는 이를 상장한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IT부문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가 없는 상태다. 지난해 11월부터 본격적인 지주회사 출범 준비에 착수했지만 1년이 다 되도록 IT자회사 설립 여부도 결정짓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합병설이 나돌면서 IT자회사 공동 설립을 추진했던 하나은행과 한미은행은 합병 논의가 중단되면서 자회사 설립 계획도 백지화됐다. 당시 두 은행은 합병의 다음 단계로 IT통합을 위해 자회사 설립을 추진했지만 합병이 무산된 상황에서 IT통합은 무의미하다고 판단, 지난해 10월 공동사무국을 폐쇄하고 설립 논의를 중단했다.
현재 두 은행 중 하나은행만이 SI업체와 공동으로 IT자회사 설립을 추진중이며 한미은행은 IT자회사 설립을 포기한 상태다.
국민은행은 갑작스런 합병 결정으로 IT자회사 계획이 중단된 경우다. 이 은행은 지난해 ‘이에프아이닷컴(가칭)’이라는 IT자회사 설립계획을 발표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갔지만 같은해 11월 주택은행과의 합병이 결정되면서 당초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이 은행 관계자는 “합병은행의 행장이 선임된 후에야 IT관련 통합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그 이전에는 IT자회사와 아웃소싱 등 어느 경우의 수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안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1년 전부터 IT자회사 설립을 추진해왔던 농협중앙회는 내부의 반발로 지난달에 관련 태스크포스를 해체하고 설립 계획을 백지화했다.
당시 농협은 IT자회사 설립이 은행권의 추세라고 판단, 자본금 200억원 규모의 자회사 설립을 계획했으나 고용 불안 등을 우려한 노조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계획을 철회했다.
이처럼 금융권의 IT자회사 설립이 초기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존 전산 인력의 반발 탓이 크다. 대부분의 전산직 종사자들이 비교적 고용상태가 안정적인 은행이라는 울타리를 보고 입사해 IT전문 회사로의 이직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IT자회사 설립을 비용 및 업무 효율성 개선이 아닌 전략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경영진들의 시각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우리금융, 하나-한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IT자회사를 단지 회사 통합과정의 한 단계로 접근할 경우 중복투자 방지, 업무 효율화 등 초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금융권 관계자는 “기존 전산 인력의 처우 문제를 비롯해 자회사 운영 방식 등 여러 난제가 많아 IT자회사 설립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지적하면서 “무엇보다 IT자회사 설립을 전략적인 수단으로만 여기는 경영진들의 시각이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