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용주의 영화읽기>윤종찬 감독의 ’소름’

 낯선 장르, 낯선 이미지. 윤종찬 감독의 데뷔작 ‘소름’은 미스터리 심리 공포라는 복합적 장르가 혼재해 있는 작품이다. ‘소름’은 많은 호평을 받았던 그의 단편영화 ‘메멘토’를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부천영화제의 폐막작이라는 성과가 말해주듯 이 영화는 몇가지 점에서 감독의 저력있는 역량을 표현해 주고 있다. 물론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연출력이다.

 이 작품은 신인감독답지 않은 배우들에 대한 통제력이나 관습적인 장르의 힘을 빌지 않으면서도 신선한 영화적 내러티브는 물론 스타일리스트로서 감독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공포라는 지극히 대중적인 감성의 코드를 다루지만 여기서 다뤄지는 공포의 색깔은 우리가 봐왔던 유혈이 낭자하거나 심령물이 보여주는 미지의 공포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잔혹한 운명’이라는 보다 직접적이며 불가항력적인 카데고리안에 놓여진 지극히 세련된 감성의 모노톤을 보여주고 있다.

 다 쓰러져 가는 낡은 미금아파트.

 재개발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나간 이곳에 택시기사 용현이 504호로 이사온다. 그가 사는 504호는 몇달전 소설가 지망생 광태가 의문의 화재로 인해 죽은 방이다. 용현의 옆방 505호엔 이 아파트의 주민들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는 어느 3류 소설가가 살고 있다. 용현은 같은 층 510호에 살며 편의점에서 일하는 선영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며 가까워지게 된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도박을 하는 남편에게 돈을 뜯기고 매를 맞으며 하루하루를 지겹게 살아가던 선영은 용현과 가까워지고 둘의 만남은 그들이 알지 못했던 비극적 운명의 과거로 그들을 끌어들인다.

 영화 ‘소름’은 영화의 주 무대이자 가장 중요한 캐릭터로 배치돼 있는 미금아파트에서 일어난 30년전의 살인사건과 맞물려 인간의 잔혹한 운명을 얘기한다.

 각 인물들의 배치와 성격은 마치 완성된 퍼즐이 악령을 불러 일으키듯 공포의 심연을 향해 한걸음씩 발을 들이민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이 영화의 수확은 주인공을 맡은 장진영의 새로운 ‘발굴’에 있다.

 장진영은 그동안 영화에 얼굴을 들이밀면서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던 차에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의 ‘얼굴’을 비로소 찾은 느낌이다. ‘소름’은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공포영화라기보다는 곱씹을수록 새로운 의미와 재미를 더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관객과의 소통이란 점에서 볼 때 신인감독에게 그 해답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는 듯하다.

 전체적인 영화의 균형도로 볼 때 전반부의 작가적 역량이 후반부로 올 수록 흐트러지면서 다소 과장된 사운드나 이미지 등을 삽입, 타협을 하기 위한 장르적 영화의 코드를 남발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영화평론가 yongjuu@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