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PC산업은 20여년간 ‘흐림’과 ‘맑음’을 거듭하며 IT산업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수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에는 국내 IT산업 성장의 원동력으로, 수출이 부진한 시기에는 전 IT산업의 동반 부진의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총 1000여만대의 PC가 생산돼 국내 주요 수출품목에서 금을 제치고 5위에 랭크되기도 했지만 올해에는 전세계적인 IT불황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내수는 25%, 수출은 20% 가까이 줄어들어 우려를 낳고 있다.
국내 PC산업이 태동한 것은 70년대 후반 삼성전자, 금성사, 두산컴퓨터, 한국상역 등이 다국적 기업의 국내 판매 대리점을 맡으면서부터다. 이후 80년대 초반부터 PC제조에 뛰어들면서 국내 PC산업은 비로소 산업적인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85년부터 89년까지는 PC생산과 수출이 각각 연평균 47.9%, 70.7% 성장하면서 가전제품에 집중돼 온 국내 전자산업을 IT분야로 눈을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80년대 중반 이후 PC산업이 이처럼 급성장한 이유는 대우·삼성·LG·현대 등 소위 메이저 가전업체들이 그동안의 가전제품 생산경험을 바탕으로 대량 생산체계와 저렴한 국내 인건비, 수직적인 사업구조 및 연관산업을 발판으로 이루어진 결과다.
그러나 90년대 초에는 전반적인 세계 경기침체와 PC고급화 추세에 따라 저가PC 공략에 집중해 온 국내 PC 제조업체들은 한자리수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95년 국내 PC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한다. 삼성전자는 95년 당시 3억7700만달러를 투자해 세계 시장점유율 5위를 달리던 AST를 인수했다. 반도체가격 급등에 따라 자금여력이 충분해진 삼성전자는 AST인수를 통해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 위주의 PC시장 전략에서 탈피, 자가 브랜드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AST는 기대와 달리 줄곧 극심한 경영난을 겪으며 결국 3년 7개월만인 99년 1월 매각됐다. 삼성전자가 시장철수를 신중히 검토하기 시작한 98년 가을께 삼보컴퓨터와 모니터업체인 KDS는 공동으로 미국에 e머신즈라는 PC판매회사를 설립했다. e머신즈는 그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저가PC를 출시, 한때 미국 소매시장에서 판매대수 기준으로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적을 기반으로 나스닥에 상장, e머신즈 신화로까지 불리었던 e머신즈의 성공은 저가PC 업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하고 결국 올해 나스닥에서 퇴출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나 업체들의 이같은 노력은 90년대 중반 이후 PC 연평균 수출 증가율이 60%까지 증가하는 결실을 맺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세계 5대 PC 제조국으로의 위상을 안겨줬다.
<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