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PC제조업체들은 총 1000여만대를 생산했으며 이중 60%가량을 해외시장에 내다팔았다. 대략 지난해 전세계에 판매된 PC 11대 가운데 1대가 한국산인 셈이다. 대수면에서 보면 그다지 나쁜 실적은 아니다.
특히 내수 시장에서는 9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 어느 국가보다도 자국 제품 비중이 높은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16년 만에 전세계적으로 PC출하대수가 줄어들 정도로 극심한 침체를 겪었던 지난 상반기에 수출은 20% 가까이 줄어드는 등 침체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최대 경쟁국인 대만업체들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컴팩, 델, HP 등 메이저 업체들의 아웃소싱 물량이 대만에 몰리면서 수출 감소폭은 10%정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대만의 최대 노트북 PC업체인 콴타의 경우 올해 4월까지 노트북 PC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52%늘어나는 등 아웃소싱 확대에 따른 대표적인 수혜기업으로 부상했다.
자가 브랜드 방식의 수출은 델, 컴팩, IBM, HP 등 세계 메이저 PC업체들의 시장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사실상 우리나라 업체의 자가 브랜드 수출 환경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컴팩, IBM, 델, HP, 패커드벨/NEC 등 상위 5개 업체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96년에 31%에서 97년에는 37.8%로, 98년에는 39.9%, 99년 2분기에는 다시 43%로 지속적인 상승을 보이고 있다. 특히 메이저 PC업체들마저 저가 PC시장 공략을 강화하면서 국내 업체들이 파고들 여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국내 주요 PC업체들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 수출은 대만과 경쟁하고 있다.
대만은 전세계 주기판의 70%, 데스크톱PC 생산의 25%, 노트북PC의 53%를 제조하는 세계 최대 PC생산국이다. 사업모델도 자체 브랜드 수출보다 OEM이나 독자설계주문자상표부착생산(ODM)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국내 기업들의 사업모델과 거의 비슷하다.
대만 PC산업의 장점은 칩세트부터, 주변기기 등 PC관련산업이 골고루 발전돼 부품 공급 납기, 부품 가격 등에서 국내 기업들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국내 기업도 모니터, 광저장장치, D램 등과 같은 분야에서는 세계 1위의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지만 5000여개에 달하는 PC관련 기업이 줄지어 있는 대만과 비교하면 부족함이 있다. PC본체 경쟁력의 가장 큰 경쟁요소인 주기판 설계 능력에서는 대만에 비해 열세에 놓여있다.
실제로 국내 PC업체 중에서 주기판 설계능력과 원가 경쟁력을 함께 보유한 기업으로는 삼성전자, 삼보컴퓨터, LG전자, KDS 등 4개사에 지나지 않는다. 삼보컴퓨터는 노트북PC와 관련해서는 최근에서야 자체 개발 제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대만으로부터 일부 주기판을 수입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에서도 높은 인건비와 규모의 경제의 차이로 열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재료비가 같다고 가정하더라도 인건비를 포함한 공장 출하가는 대만제품이 6% 정도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PC제조업체가 풍부하다는 것도 대만 PC산업의 강점이다. 지난해 20만대 이상의 노트북PC를 생산한 대만 PC업체 수는 10여개사에 달하며 총 1200만대의 노트북PC를 생산했다. 이처럼 규모가 되는 기업이 많다는 점은 아웃소싱을 고려하는 데 유리한 점으로 작용한다.
국내 PC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 메이저 업체들이 아웃소싱을 추진하기 위해 국내를 방문하더라도 방문할 만한 업체는 2, 3개 업체에 그친다”며 “10여개 업체들이 활동중인 대만 PC업체들에 비하면 2, 3개 업체가 경쟁하는 국내 업체 현황이 아쉬울 때가 많다”고 밝혔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