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한 시골 마을에 새 극장이 문을 연다. 날이 저물고 영화 상영 시간이 다가오자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할아버지부터 아이의 손을 잡은 아낙까지 관람객들이 극장을 찾아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밀려드는 관람객을 모두 초대하기에 좁은 극장은 한계가 있다. 그때 재치있는 영사기사는 스크린을 향해 있던 영사기를 야외의 벽면으로 돌린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지붕삼아 은막의 감동 속으로 빠져드는 그 기분이란...
영화 ‘시네마천국’의 유명한 한 장면이지만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는 아니다.
한 번쯤 도심의 복잡한 극장을 피해 이처럼 낭만적인 영화 감상 기회를 꿈꾼 적이 있다면 올 여름 서울 근교의 자동차 극장으로 피서를 떠나는 것은 어떨까.
일에 쫓겨 휴가를 반납했거나 휴가 기간 달리 뾰족한 여행 계획을 세우지 못한 직장인들에게 자동차 극장을 비롯한 도심 주변의 휴식처는 큰 위안이 된다.
행락객들이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고속도로에서 시달리고 있을 그 시간, 자동차 안에서 한가롭게 영화를 즐긴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보통 밤 8시경부터 하루 3∼4회 영화를 상영하는 서울 도심의 자동차 극장에는 개봉한 지 2∼3주가 지난 영화가 내걸린다.
자동차 한 대당 1만2000원에서 1만5000원의 요금을 받기 때문에 3∼4명이 가족 나들이를 하기에도 경제적이다.
풀냄새가 싱그러운 남산 산책로를 타고 올라가는 남산 자유센터 내의 ‘클럽EOE4’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이상적이다.
야외 수영장을 갖춘 양재동 ‘광개토21’은 여름철 영화와 수영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어 물놀이를 떠나지 못한 이들의 아쉬움까지 달래준다.
도심 밤풍경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부근의 잠실 자동차 극장도 매력적이다.
영화 관람에 좀더 욕심을 내 도심 근교 드라이브를 겸할 수도 있다.
용인 민속촌 가족공원 앞 ‘용인 애플스타’는 방학을 맞이한 자녀와 함께 들를 만하다. 오래간만에 가족끼리 영화도 보고 민속촌이나 인근 경기도 박물관까지 들르는 데 별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동차 극장에서는 부스럭거리는 과자 소리나 아이들의 소음 등을 신경쓸 필요없이 편하게 담배를 피우면서 그야말로 ‘사적인’ 분위기에서 영화 관람이 가능하다. 다녀온 사람들이 주말마다 이곳을 다시 찾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마이카족이 아니라면 DVD방에서 영화 삼매경에 빠져보는 것도 괜찮은 피서법이다. 특히 신촌·대학로 등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번화가에서 DVD방만큼 쾌적하고 아기자기한 데이트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제 빵빵한 사운드와 40∼70인치에 달하는 대형 화면만으로 DVD방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가장 잘 알려진 대학로 ‘마기클럽’이나 신촌 ‘DVD존’은 n세대들의 취향에 맞는 인테리어와 서비스로 각광받고 있다.
대학로 한국방송대학에서 혜화로터리 방향으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마기클럽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을 차지한 대형 유리창가의 마기카페 공간이 먼저 눈에 띈다. 예약을 하지 못했을 경우 30분 이상을 기다리기 일쑤지만 카페에 앉아 대학로의 풍경을 구경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한가로움도 싫지 않다.
신촌 DVD존은 플레이스테이션2를 비롯한 각종 게임과 체감형 음악청취기를 갖추고 단순히 DVD 감상만을 기대하고 이곳을 찾은 손님들에게 뜻밖의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최근에는 DVD타이틀도 점점 풍성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볼 만한 DVD타이틀이 부족하다’는 ‘옥의 티’ 때문에 DVD방을 꺼려했다면 이제는 걱정을 버려도 될 듯 싶다.
‘자동차나 DVD방도 좋지만 그래도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정통파라면 조금 비용이 들더라도 프리미엄 영화관을 미리 예약해두는 것은 어떨까. 분당 CGV극장에서 2만5000원을 내면 2명이 1시간 30분 동안 호텔 수준의 골드 클라스 서비스를 받으며 영화를 볼 수 있다.
앉아서가 아닌 누워서 영화 관람을 할 수 있다는 점은 관객을 이끄는 가장 큰 유혹이다.
굳이 비싼 돈을 들여 프리미엄관을 찾지 않더라도 삼성동 메가박스, 강변역 CGV 등 이미 보편화된 대형 멀티플렉스들은 더위를 식혀줄 훌륭한 복합 놀이공간이다.
메가박스에서 표를 끊고 아셈빌딩 지하 2층에 위치한 메가웹스테이션에 들러 마음에 맞는 친구와 가볍게 PC게임 한판 하는 재미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공짜 PC를 활용해 메일 확인까지 하고 나면 서울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피서를 즐기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낄 법도 하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