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KHC 건강보험카드 컨소시엄 사업설명회에는 600여명의 업계 관계자들이 몰려 들었다. 300여명의 좌석이 한정된 설명회장은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한 기업체의 사업설명회장이라 믿기 어려운 과분한 ‘인기’는 현재 건강보험카드 사업을 둘러싼 국내 사업자들의 관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스마트카드 방식의 건강보험증 도입을 공식 밝힌 지금도 정책의 현실화 여부는 불투명한 게 사실. 시민단체나 당정간의 원칙적인 합의도 없었을 뿐더러 더구나 어떻게 구체화할지는 제시된 것이 전무하다. 그렇지만 정보기술(IT) 업계나 금융 등 유관 기업들은 벌써부터 나름대로의 사업구상을 밝히면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또한 기대감에 충만해 있다. 현재 건강보험카드 사업과 관련 공식적으로 사업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4개 주요 컨소시엄을 소개한다. 편집자
◆KHC (Korea Healthcare Card)
KHC(대표 이강현 http://www.khcc.co.kr)는 스마트카드 방식의 건강보험카드 사업을 겨냥해 현재 유일하게 컨소시엄 참여기업이 공동법인을 설립했다. 국민·BC·삼성·외환·LG캐피탈·신한은행 등 신용카드사는 물론 시스템통합(SI)업체인 삼성SDS·LGEDS·한솔텔레콤, 솔루션 공급업체인 한국IBM·한국사이베이스, 단말기 제조업체인 케이디이컴·효성·스마트로, 통신업체인 LG텔레콤 등 분야별 23개 주요기업들이 주주사나 협력사로 참여하고 있다. 민간 시장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경쟁사들이 모두 의기투합한 사례다.
KHC가 자평하는 강점은 △전자건강보험증 총 사업비용을 신용카드 모집비용으로 충당하는 사업모델 개발 △각 분야의 선두업체 참여로 신뢰도 확보 △6개 신용카드사의 참여에 따른 보급 용이성 △서울강동성심병원에서의 시범사업 경험 등을 꼽고 있다. 삼성SDS·LGEDS시스템 등 공공부문 프로젝트 경험이 풍부한 IT역량도 빼놓을 수 없다. KHC는 전국민에게 전자건강보험증을 국민의 비용부담 없이 무상으로 발급하겠다는 전략을 뚜렷이 밝히고 있다. 이는 전자건강보험증 기능을 신용카드와 결합해 발급함으로써 신용카드사가 발급비용을 부담할 수있다는 합의 때문이다. KHC측은 전자건강보험증 총 사업비용은 10년간 약 9739억원이 드는 반면 현행 신용카드 모집비용은 약 1조6683억원이 든다는 데서 근거를 찾는다.
신용카드를 이용한 투자수익모델을 제시함으로써 KHC는 일반 국민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정부 등 3자 주체의 비용부담 없이 전국민과 요양기관에 전자건강보험증 및 조회시스템의 무상 발급을 자신하고 있다. KHC는 특히 지난 3월부터 서울강동성심병원과 인근 약국에서 지역주민 3000여명을 대상으로 신용카드와 전자진찰권 및 전자처방전을 연계한 시범사업 경험을 내세워 병원의 내부시스템을 통합하는 방대한 작업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밝힌다.
◆HIS (Healthcare Insurance System) 컨소시엄
HIS는 서울 지하철 교통카드사업자인 씨앤씨엔터프라이즈와 포스데이타·SKC&C·한국통신·대우정보시스템·효성데이타시스템 등 SI업체, 미국의 메디컬매니저 등 모두 14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전자건강보험카드 컨소시엄.
HIS컨소시엄은 △건강보험카드의 전자화사업에 드는 제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 △후불제로 신용카드 기능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을 특히 장점으로 내세운다. 비용절감 요인으로는 지하철 교통카드사업자인 씨앤씨엔터프라이즈의 시스템 운영경험을 꼽는다. 이 회사는 철도청과 서울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에 시스템 설치 및 운영을, 5호선과 8호선에는 장비를 납품한 경력이 있어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약 1조원으로 예상되는 전자건강보험카드 구축사업의 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는 게 컨소시엄측의 주장이다. 이미 교통카드로 다수 보급돼 있는 RF카드와 접촉식 스마트카드를 결합한 콤비카드가 HIS 컨소시엄의 솔루션이다. 교통·신용카드·건강카드의 기능을 동시에 지원하는 다목적 카드를 제공함으로써 기존 시설투자를 최대한 활용하는 대신 비용은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인터넷 등 저렴한 통신인프라를 적극 이용하는 방안도 강조하고 있다.
HIS컨소시엄의 기술적 특징은 차별화된 해외 선진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것.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시행착오를 막기 위해 해외에서 이미 검증된 ‘메디컬 매니저 헬스케어시스템’을 통해 조기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뜻이다. 또 개인인적사항과 진료기록·처방전 정보 등은 건강보험공단의 호스트컴퓨터에 둠으로써 정보의 유출과 임의적 사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예정이다.
HIS컨소시엄은 시스템 구축비를 정부가 전액 부담하거나 민자사업자에 의한 기부체납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대신 카드 발급비용은 카드사에서 부담함으로써 국민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연불 방식의 미국 수출금융을 이용해 외자유치효과 및 신인도 향상에 기여할 수도 있으며 단말기 설치 및 소요비용은 전액 공단 운영비로 해결, 병원 및 약국 비용부담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민건강카드 컨소시엄
선발 전자화폐 전문업체인 몬덱스코리아가 주도하는 국민건강카드컨소시엄의 서비스 모델은 전자건강보험증 발행주체가 반드시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서 차별화된다. 이는 건강보험카드가 일종의 대국민 ID카드로 정보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발행주체가 민간기업이어서는 안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국민건강카드 컨소시엄은 의료재정의 수익보전 및 국민 개개인의 정보유출방지 등을 위해 건강보험공단이 독자 브랜드로 독립채산제 형식의 IC카드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단이 전자화폐를 기본 탑재한 스마트카드 형태의 건강카드를 발급하고 진료비 등은 전자화폐로 결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컨소시엄은 이를 위해 몬덱스 가 전자화폐 운영시스템을 제공하고 각 의료기관을 연결하는 전산망을 건강보험공단에 구축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정부 예산지원 없이 순수 민자유치를 통해 소요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건강보험공단은 우선 현행 건강보험증을 독자브랜드인 IC건강보험카드로 대체 발급할 수 있다. 기존 건강보험증이 전자화폐 기반의 IC카드로 교체되면 칩속에 공단이 제공하고자 하는 가입자 정보 및 전자처방전 등 의료정보를 넣을 수도 있고 주전산시스템과 연동도 가능하다. 전자화폐로 진료비를 자동 결제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특히 시민단체들이 우려하고 있는 개인 의료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컨소시엄은 건강보험카드 발급절차가 현행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본인의 동의가 있을 때만 공인된 의료인에 한해 진료종류에 따른 정보열람을 허락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고 제안한다. 따라서 국민건강카드 컨소시엄의 서비스 모델은 건강보험증이 은행·카드사와 연계된 금융상품이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개인은 건강보험증과 전자화폐 기능만 기본적으로 제공받는 대신 희망할 경우 기존 거래 은행이나 카드사 상품들과의 연계를 통해 신용·직불 등 추가적인 금융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는 방식이다.
컨소시엄은 시스템 구축 및 운영을 포함한 사업의 제반 관리를 담당하고 사업운영비를 제외한 전체 수익금을 공단에 전액 제공해 건강보험 재정안정화를 지원한다는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은행컨소시엄
은행컨소시엄은 지난 7월초 20개 시중은행을 대표해 금융결제원·한국통신·에스원·현대정보기술·미래시티닷컴·메드밴·패스21·한국정보통신이 협약을 체결하고 금융결제원에 사업추진기획단을 구성함으로써 본격 출사표를 던졌다.
은행컨소시엄은 시스템 구축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전체 시스템을 이관, 관리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스마트카드에는 주민등록번호·보험증번호 등 수록내용을 최소화하는 한편 금융결제원과 한국통신 등 공공 전산서비스기관을 이용한 데이터의 관리로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또 금융결제원의 공인 인증서비스와 연계함으로써 시스템 보안성에 특히 주안점을 둔다는 방안이다. 여타 컨소시엄과 마찬가지로 전자건강보험카드는 일반 국민에게 무상 발급키로 제안했다. 그러나 병원 등 요양기관에 단말기 관련 소프트웨어도 무상 제공한다는 계획은 특징적이다.
은행컨소시엄의 제안시스템은 무엇보다 국가기간망 가운데 하나인 금융공동망과 통합의료 전산망을 연계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금융공동망 운영기관인 금융결제원의 서비스 안정성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대용량 의료시스템 구축 경험, 20개 은행 영업점을 통한 발급 및 결제 용이성, K캐시 전자화폐 운영경험, 국산 카드 및 기술 보유 등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특히 은행 컨소시엄은 시스템 신뢰도를 미리 보여주기 위해 K캐시 발급예정지인 강원도 춘천시에서 이달부터 시범운영을 실시할 예정이다. 춘천시·금융결제원·한국통신·미리시티닷컴 등은 이미 시범사업 참여주체로 선정됐다.
은행컨소시엄은 시스템 개발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무상으로 넘겨주고 기존의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중복투자 비용 발생을 완전 억제할 계획이다. 카드발급은 은행부담, SI 구축비용은 은행권과 협력해 은행권과 일부 참여업체의 부담으로 한다는 것이다. 특히 별도의 법인 형태가 아닌 은행컨소시엄은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주도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