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된 삼국지가 있다. 한동안 아침 전철 출근시간을 만화 삼국지 읽는 재미로 보낸 적이 있었다. 그 책의 표지에는 삼국지를 세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삼국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듯 싶은 고전이다.
삼국지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과 함께 한번 더 읽느라고 제시간에 반납을 하지 못해 담당 선생님한테 엉덩이를 무참하게 얻어맞은 기억도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물론 지금도 삼국지의 재미는 늘 새롭다.
황건적이 도처에서 출몰하던 1700여년 전 중국의 후한 말기. 어지러운 정세를 틈 타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야심을 품은 장수들이 곳곳에서 군사를 모아 전쟁을 일으켜 혼란이 가중된다. 이런 와중에 한나라를 자기 손아귀에 넣기 위해 세력을 펼쳐 나가는 위나라의 조조와 한나라 황실의 피를 이어받은 촉나라의 유비, 3대에 걸쳐 나라를 가꿔온 오나라의 손권이 끝없는 전쟁과 타협, 권모술수와 의리를 바탕으로 파란만장하게 전개된 역사를 엮은 것이 삼국지다.
삼국지가 처음 책으로 엮어진 것은 원나라 지치연간(至治年間:1321∼1323)에 그림을 붙여 간행한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로, 이 책은 현존하는 최고본(最古本)이다. 하지만 일종의 강담용(講談用) 대본 같은 것이어서 문장이 조잡하고 유치했다. 원나라 때 나관중은 이 평화를 개작하고 역사적 사실을 첨가하여 새로운 삼국지를 완성했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현존하는 최고본은 1494년의 서문이 있는 홍치본(弘治本)이다.
약 96년 동안 중국 대륙의 역사를 바탕으로 엮어진 삼국지에는 여러 영웅호걸들이 등장한다. 조조, 손권, 제갈공명, 봉추. 하지만 주인공은 역시 유비와 관우, 장비다. 복숭아꽃이 만발한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고 한나라의 중흥을 위해 목숨을 함께할 것을 맹세한 그들은 수많은 전쟁과 삶, 의리를 통하여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제공하는데, 그들 중에서 가장 먼저 목숨을 잃은 자가 관우다.
관우는 불그스름한 얼굴에다 긴 수염을 휘날리는 9척의 장수였다. 적토마를 타고 80근의 청룡도를 자유자재로 휘둘러 적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져 도망을 치곤 했다.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던 관우는 의리와 충성심, 나름대로의 자부심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관공, 관왕으로 추앙을 받는 인물이 되었는데, 그런 관우의 죽음이 삼국지 전체의 흐름을 바꿔 놓고 있다.
관우가 죽음을 맞이한 형주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였다. 형주는 원래 적벽에서 조조와 싸워 이긴 오나라가 차지하려 했으나 제갈공명의 계책으로 유비가 차지하게 된 땅으로,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시기가 난 조조가 오나라의 손권과 함께 공격하여 빼앗으려 하면서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조조와 손권이 수십만 군사를 함께 일으켜 형주로 쳐들어온 것이다.
전쟁 초반부터 관우는 뛰어난 지략과 통솔력으로 승리를 거둔다. 자신의 관을 만들어 전쟁에 나선 위나라 장수 방덕이 이끄는 주력 10만 대군도 관우가 강을 막아 벌인 홍수 작전에 단 5백여명의 군사만 남긴 채 괴멸되고, 사로잡힌 방덕도 목이 잘리고 만다. 당시 관우의 활약은 조조에게 위나라의 도성을 옮기는 문제까지 거론하게 할 만큼 공포감을 주었다.
관우는 여세를 몰아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꽃으로 일정한 신호를 주고받는 봉수 통신망을 구성해 놓고 형주성에서 군사를 빼내어 위나라 번성을 공격한다. 대치하고 있는 오나라 군사의 움직임을 봉수 통신을 통해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오나라 군사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첫번째 봉수대에서 약정된 봉수 신호를 보내고 그 봉수 신호를 확인한 두번째 봉수대에서 똑같은 신호의 봉수를 올려 세번째 봉수대로 신호를 보낸다. 이렇게 해서 셋째, 넷째, 다섯번째 봉수대로 계속 이어져 관우가 있는 본대까지 그 정보를 전하게 되는 통신망이었다.
형주성을 빼앗기 위해 전략을 세운 오나라는 먼저 관우와 형주성의 통신망을 와해시키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야간에 상선으로 가장한 배에 군사를 숨기고 제 1봉수대에 상륙, 재물을 한아름 안겨준 다음 야음을 틈타 군사를 일으켜 봉수대의 병사들을 제압했다. 이어 80여척의 배를 동원하여 병사를 상륙시켜 제2, 제3, 제4 봉수대를 공격, 통신망을 완전히 와해시켰다.
첫번째 봉수대에서 불이 오르지 않자 다음 봉수대부터는 무용지물이었다. 오나라 군사가 형주성에 이르는 동안까지 한 줄기의 연기도 피어오르지 않았다. 위급할 때 피어오르게 되어 있는 봉수 통신을 믿고 안심하고 있던 관우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이다.
형주성이 무너지자 대치하고 있던 위나라 군사들도 관우에게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관우의 부하들은 형주성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병영을 이탈하게 되고, 관우는 유비의 신뢰를 저버렸다는 생각으로 무리하게 형주를 향해 진격하지만 공격하기도 전에 복병을 만나 맥성으로 퇴각하게 된다. 봉수 통신망의 와해로 잃은 형주성 때문에 당황하게 된 관우는 다시 무리수를 두게 되어 또 다른 패배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위와 오군에 패한 관우는 수백명밖에 남지 않은 군사로 몇 십만 대군을 상대로 싸울 수가 없어 원군을 요청했다. 그러나 기다리던 원군은 오지 않고, 관우는 맥성에서 나와 탈출을 기도하다 끝내 오나라 장수 여몽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장수답게 목을 쳐줄 것을 요청했고, 드디어 관우의 목은 잘리고 말았다. 서기 219년 12월, 관우 나이 58세가 되던 해였다.
관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는 며칠을 울며 슬퍼하다 오를 공격하기 위해 장비를 선봉에 세운다. 하지만 관우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전군에게 흰옷을 입히려다 부하에게 미움을 사게 된 장비는 그 부하들에게 목이 잘리고 만다. 장비마저 죽자 유비는 75만 대군을 이끌고 직접 오를 공격한다. 초반의 연전연승과는 달리 오나라 육손의 화공에 촉의 군사는 괴멸되고, 간신히 살아남은 유비는 백성들을 볼 면목이 없어 성도에 돌아가지 못하고 병을 앓다가 죽고 만다.
봉수 통신망의 와해로 비롯된 관우의 죽음과 그에 따른 장비와 유비의 죽음으로 삼국지의 주인공은 삼국지에서 사라져 버리게 된다. 뒤를 이어 제갈공명이 대활약을 하지만 그 재미 또한 유비와 관우, 장비가 활약하던 때와는 맛이 다르다. 결국 삼국지는 형주성의 봉수 통신망의 와해를 기점으로 그 흐름이 바뀌게 된 것이다.
한편, 삼국지의 또 다른 한 축으로 종횡무진 활약한 제갈공명. 공명이 그처럼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름대로 구축한 정보통신망 때문이었다.
공명은 수운업자들의 운조(運漕)와는 별도로 또 하나의 정보 수집망을 구축했다. 이른바 ‘우정(郵亭)’이었다. 운조의 조직을 보고 착안한 것으로, 현재의 우체국처럼 나라 안의 소식을 서로간에 빠르고 손쉽게 연락하는 조직이었다.
그러나 실제 중요한 임무는 나라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피고 분석하는 정보수집망이었다. 공명은 먼저 우정 설치의 책임자로 황풍을 임명하고 성도에서 백수관까지 4백여 곳에 우정의 조직망을 설치했다. 그밖에 여러 곳에다 지부를 설치하고 각 지역의 정보를 수집한 후 비밀 연락망을 통해 정보를 확보, 다양한 계략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봉수통신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활용한 기록이 있다. 국가의 비상통신망으로 전국 곳곳에 설치되어 전기통신이 도입되기 전까지 긴급 통신망의 주축으로 활용되었고, 전국 각 변방의 상황을 서울의 목멱산(남산) 봉수대로 모아 궁궐에서도 정세를 알 수 있게 했다.
우리나라 봉수통신에 관한 사항은 다음 호에 거론한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한국통신 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