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PC방의 폭발적인 인기로 인해 홀대받았던 당구장이 다시 붐비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남자 대학생들은 자신이 자주 애용하는 당구장 하나쯤은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당구의 세계를 접한 사람도 있었고 대학생이 되어 선배의 권유와 자발적인 자기개발(?)을 위해 그리고 여유시간을 보내기 위해 당구를 치던 대학생들이 있었다.
그래서 대학교 근처 당구장은 늘 발 디딜 틈도 없었다. 한 번 당구를 치기 시작하고 그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면 수업도 여자친구도 잊어 버린 채 당구 큐대를 마치 연인의 손인 것처럼 꼭 잡고 놓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런 대학생 문화도 인터넷과 컴퓨터의 보급, PC방 확산으로 인해 많이 변했다.
PC방이 우후죽순으로 문을 열고 컴퓨터와 케이블을 통해 보다 넓은 세계로 이끌 수 있다는 장점과 특히 이용료가 아주 저렴하다는 매력으로 지갑이 얇은 대학생들을 끌어 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게임 어때?”로 통했던 ‘당구치자’는 말은 ‘온라인게임을 하자’는 말로 변해 버렸다.
대학생 사이에서는 최신 게임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그 사람의 능력 지수가 되기도 했다. 초기 PC방이 등장하고 많은 당구 펜들이 온라인게임에 푹 빠지게 되어 문 닫는 당구장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신입생들도 당구를 치자는 선배도 없고 당구에 별 호감도 없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울상만 지었던 당구장 주인들은 최근 다시 웃기 시작했다.
과거 당구 애호가들이 게임의 비현실성과 어디서든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게 되어 점점 PC방을 멀리 하고 옛 추억이 있는 단골 당구장을 찾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97학번 김모씨는 “온라인게임을 하면서 너무 개인주의화 되어 사람과의 관계를 잠시 잊은 적이 있다”며 “이제 온라인게임에 질렸으며 좀 현실적이고 친구들 여럿이랑 함께 할 수 있는 당구가 요즘 재미있어 진다”고 말했다.
같은과 김진호군(01학번)도 “요즘에 당구를 배웠는데 당구도 재미있지만 당구장이 고학번 선배들을 만날 수 있는 사교의 장이기 때문에 동기들과 당구장에 자주 들르고 있다”고 말한다.
고대 후문 근처의 한 당구장 주인은 “옛 고객을 보는 즐거움에 살고 있고 요즘 들어서 신입생과 복학생들로 당구장이 꽉 차고 자리가 없어서 나가는 학생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며 “당구의 옛 명성을 되찾은 기분”이라고 즐거워했다.
올해 졸업하는 불어불문학과 이모씨(94학번)는 “예전에는 선후배가 함께 당구를 치며 친해지고 서로의 얘기를 진솔하게 했는데 요즘에는 선후배끼리도 서로 모르는 것 같아 아쉽다”며 “당구든 탁구든 학생들이 이제 조금은 오프라인으로 돌아와 인간 관계에 신경을 썼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명예기자=박종철·고려대 노어노문학과 ppakk12@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