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를 살리자>자금 지원정책 이대로 좋은가(3)그래도 정부가 필요하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벤처기업들은 배수를 흥정해 가며 투자자들의 유혹에 행복감을 만끽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채마저 조달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불과 1년 만이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벤처기업들은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경험했다. 활황기 몇십배수의 투자를 받아 행복해 하던 벤처기업들은 오히려 고배수 투자유치가 걸림돌이 되어 신규 투자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 됐다. 무리한 베팅이 화를 초래한 꼴이다.

 이는 투자의 주체격인 벤처캐피털 역시 마찬가지다. 활황기의 경우 투자조합 결성 계획서만 있으면 정부, 일반법인, 개인, 기관투자가 할 것 없이 줄을 섰다. 하지만 지금은 조합 출자를 약속했던 기업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시스템 부재와 벤처캐피털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 벤처산업 성장에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부분은 역시 초기 기업에 대한 벤처캐피털들의 자금수혈이었다. 이런 벤처캐피털들의 안정적인 자금 공급은 시장에서 장기·안정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됐기에 가능했다.

 미국의 경우 벤처펀드 출자금 중 60%는 연기금이었으며 법인(12%), 금융 및 개인(11%), 보험(10%) 등의 순으로 연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또 영국(51%), 대만(49%)도 절반가량을 연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지난해 우리나라 창투조합 출자자는 법인(28%), 창투사(16.1%), 개인(15.9%), 기관(15.7%), 정부(12.3%), 외국(7.6%), 연기금(4.3%)였다. 안정성이 떨어지는 창투사, 개인, 법인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개인, 일반법인의 자금 대부분이 일회성 투기자금의 성격이 강해 평균 3∼5년 정도 묵여 있어야 하는 투자조합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안정적인 자금 공급을 기대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벤처붐에 편승해 개인, 법인 등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모을 수 있던 벤처캐피털들은 벤처거품이 걷히면서 동시에 자금원이 막혀버린 셈이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자금 공급 시스템 구축을 위한 방안으로 기관투자가들의 투자조합 출자비중 확대를 지적했다. 특히 기관투자가 중에서도 규모자체가 방대해 작은 비중을 투자해도 투자조합의 활성화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연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기금의 내부규정에 투자조합 출자근거를 명시하는 등 자산운용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48개 연기금 중 근거를 마련해 투자조합 출자를 허용한 곳은 국민연금 한곳뿐이다. 기타 연기금들의 경우 출자근거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이들 연기금이 근거를 마련하고 투자조합에 대한 출자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벤처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벤처투자 인프라 구축과 함께 연기금의 조속한 투입 등 단기 처방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동안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벤처거품을 만든 만큼 거품을 걷는 과정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결자해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벤처캐피탈협회 이부호 이사는 “궁극적으로 벤처캐피털은 투자업체를 선별, 중개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투자조합이 투자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투자조합에 대한 개인과 일반법인들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안”이라며 “현 시점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정부가 벤처캐피털에 대한 출자를 늘리는 방안뿐”이라고 말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