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 3년간 계속된 정보기술(IT) 호황을 등에 업고 한국시장에 대거 입성한 간판격 IT업체들이 채 기반을 다지기도 전에 고전을 면치 못하며 ‘불운아’로 전락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IT시장의 잠재력을 믿고 1, 2년 전부터 무차별적인 공세로 한국시장에 진출한 브로드비전·인터샵·아리바·커머스원·세이전트·웹메소드 등 내로라하는 IT업체들이 경기불황이라는 직격탄을 맞아 휘청이고 있다.
브로드비전코리아와 한국인터샵이 사실상 지사 철수를 공식화한 데 이어, 일부 기업도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등 몸집줄이기에 나서고 있어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국내 IT 투자심리가 좀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다, 실적 부진의 골도 더욱 깊어질 것을 감안하면 국내 진출한 중견 외국계 IT회사의 퇴출 분위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최근 들어 외국계 IT업체 축소가 화두가 되는 것은 국내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이렇다할 실적을 올리지 못한 때문. 비교적 오래 전에 국내 진출한 외국계 IT회사는 나름의 현지화전략으로 생존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과 달리, 기반다지기에 전력할 여유조차 없던 신생 회사들은 경기위축이라는 직격탄에 그대로 쓰러지고 있는 것. 특히 e비즈니스, 원투원마케팅, 고객관계관리(CRM) 등 신규 솔루션이 대부분으로 여기에 대한 저항과 불신이 커 국내 시장 진입이 더욱 힘들었던 탓으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에 본사측 구조조정이 더욱 악재로 작용했다. 닷컴열풍을 주도한 이 회사들은 2분기 실적 발표에서 당초 예상보다 적자 폭이 커짐에 따라 전사적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아·태지역에 대한 칼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원투원솔루션 전문회사인 브로드비전은 본사측 다운사이징 전략에 따라 한국지사 규모를 대폭 축소키로 하고 8일 본사 임원진이 방한, 후속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e비즈니스 업계 ‘대부격’이라는 세계적인 명성 덕택에 지난해 10월 지사 설립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브로드비전코리아(대표 김철수)는 최근까지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이 사실. 워낙 고가 솔루션인 데다 마케팅 능력 부재, 지원능력 부족이라는 멍에를 안아온 브로드비전코리아는 지사설립 전에 수주한 프리챌을 제외하고는 신규 사이트가 없다.
중국과 함께 이번 다운사이징의 타깃이 된 브로드비전코리아는 기술지원을 담당하는 엔지니어 한 명만 남는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한국지사 철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3명에서 9명으로 인원을 감소하며 3개월 전부터 철수설이 무성한 브로드비전코리아는 앞으로 협력사 위주로 영업 및 기술지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여 한국시장에 대한 투자축소는 당연하다는 예측이다.
기업간(B2B) 및 개인화 솔루션 회사인 한국인터샵(대표 오재철)도 11명이던 인원을 2, 3명으로 대폭 축소키로 한 데 이어 사무실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국내 진출한 이후 이렇다할 실적을 올리지 못한 한국인터샵은 최근 아태지역 부사장이 방한, 철수를 공식화했다. 지난 7월 초부터 나돌기 시작한 철수설이 기정사실화된 셈. 한국인터샵은 지사 운영에 필요한 최소인원인 2, 3명만 남기로 했으나 이 역시 지사를 정리하기 위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
세계적인 CRM 회사인 시벨코리아(대표 오영수)는 국내 진출한 지 거의 1년을 맞아가고 있지만 LG캐피탈, 알리안츠제일생명, 삼성생명이 대표적인 고객사로 당초 기대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올 3월 국내 진출한 기업애플리케이션통합(EAI) 전문회사인 웹메소드코리아(대표 하혜승)도 일렉트로피아와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을 제외하고는 실적이 미진한 상태. 이밖에 카나소프트웨어코리아나 아리바코리아, 커머스원코리아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등 외국계 업체의 입지가 위축되고 있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