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흑백논리 때문인지 컴퓨터에 관해서도 지나친 수용 아니면 지나친 거부로 갈라져 있다. 과거에 컴퓨터를 만능한 것으로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런데 신기할 것이 없는 흔한 존재가 된 지금은 단순한 도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컴퓨터는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고, 컴퓨터는 주어지기만 하면 아무나 이용할 줄 알게 되며, 필요하면 아무나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의 정보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기술이나 발명은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며 필요한 것이 있는가 하면 필요없는 것도 있다. 그러나 컴퓨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다. 냉장고는 식품보존용, 자동차는 이동용 등 도구로서 명확한 역할이 주어져 있다. 그러나 컴퓨터는 명확히 주어진 역할이 없고 이용하는 인간의 요구와 능력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진다. 따라서 컴퓨터는 역할보다는 능력으로 보아야 한다. 대량의 정보를 축적·처리·전달하는 능력을 기술로 구현한 것이 컴퓨터이며 이것을 단순한 도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발전을 포기한 것이다.
일본을 닮아 우리는 전자계산기라고 하지만 중국은 컴퓨터를 전뇌(電腦)라고 하며 그 기능을 뇌력(腦力)이라고 한다. 이것은 컴퓨터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능력으로 본 것이다. 컴퓨터의 능력은 정보를 처리하고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 기능에 있다. 자동차가 근력(筋力)을 대체한다면 컴퓨터는 뇌력을 대체하는 것이다.
생명체는 환경적응력이 없으면 멸종한다. 수렵사회에서 사냥은 생존의 필수수단이었다. 태고부터 물고기는 헤엄을 쳐야 했고 환경에 적응해 양서류로서 육지에 올라와야 했다. 지식기반 정보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와 지식을 처리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이다. 이것을 바로 컴퓨터가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 리터러시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생존의 필수능력이다.
한국이 21세기에 생존하고 지구촌에 무엇인가 공헌하려면 범국민적이고 체계적인 컴퓨터 리터러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런데 컴퓨터는 주어지기만 하면 아무나 이용하게 되고 필요하면 이용하게 된다는 자연습득론이 팽배해 문제다. 이러한 생각은 종래의 기술과 리터러시를 혼동해 오류를 범한 것이다.
컴퓨터 리터러시는 자연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체계적으로 습득해야 실현된다.
어떤 기업이 사원에게 PC를 나누어 주었더니 자연히 전사원이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한다. 온라인 결재시스템을 도입하고 일주일 지나니 종전처럼 문제없이 운용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각자의 수준에서 PC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전처럼’이라면 그 기업은 정보화에 실패한 것이다. 전자우편·워드프로세서·표계산·프레젠테이션 툴 등 이제까지의 업무를 인터넷 등 새로운 방법으로 할 수 있어야 성공한 것이다. 개인도 조직도 정보기술에 의해서 종전에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거나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으면 그 투자는 헛된 것이다.
이와 같이 ‘자연습득론’은 실제로는 허구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수렵에서 농경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그 시대에 필요한 스킬(skill)을 다양한 방법으로 전승했다. 특히 지식기반 정보사회의 암묵적 지식은 고도의 교육훈련과 체험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이처럼 지식사회에 필요한 능력은 모든 사회구성원이 터득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학습환경을 정비해야 계발된다.
온국민이 정보기술에 관한 일정의 학습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이밖에 더 있다. 그것은 정보기술의 블랙박스화를 예방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컴퓨터 의존도는 가공할 정도로 높아진다. 국방, 교통신호 제어, 병원 시험검사장치, 더 나아가 전자정부에 이르기까지 사회 각계각층이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다. 생명과 재산을 모두 우리는 컴퓨터에 맡기고 있다.
컴퓨터는 정보기술의 원점이며, 일진월보하고, 아무나 손을 댈 수 없는 블랙박스가 되기 쉽다. 정보기술에 관련된 고등교육도 문과·이과를 초월해 전자공학·정보공학·컴퓨터사이언스 등으로 세분화됐다. 이러한 현상을 방치하면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정보기술에 관한 권력이 일부 테크노크라트가 독점할 위험성도 있다. 온국민이 정보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학습을 통해 고도의 정보기술을 생활화할 때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실현된다.
세계인터넷청소년연맹 총재 juseo@netsg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