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의 악학궤변>얀코빅

  최근 음치가수 이재수의 난(?)을 계기로 패러디 음악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패러디 음악의 대표 뮤지션인 얀코빅(Weird Al Yankovic)도 덩달아 재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이재수와 얀코빅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이만저만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한 쪽은 음치가수지만 다른 한 쪽은 뮤지션이라는 점이다. 이재수가 패러디를 택한 것은 음악적 재능이 없음을 커버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얀코빅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장르였기 때문이었다.

 얀코빅은 83년에 토니 베실의 ‘Micky’를 패러디한 ‘Ricky’로 데뷔했다. 이어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을 이것저것 마구 먹어치우라는 ‘Eat It’으로, 마돈나의 ‘Like A Virgin’을 외과의사의 애환(?)을 담은 ‘Like A Surgion’ 등으로 패러디하면서 인기를 이어갔다. 특히 그의 음악은 MTV를 통해 재미있는 뮤직 비디오로도 눈길을 끌었다.  90년대 들어서는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를 패러디한 ‘Smells Like Nirvana’로 다시 한번 인기를 모았으며 패러디영화 ‘스파이 하드’의 주제곡을 맡아 ‘007 유 어 아이즈 온리’의 오프닝을 패러디한 뮤직 비디오를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포켓몬 2000’ 영화 사운드트랙에 ‘Polkamon’을 제공하며 패러디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패러디는 팝, 메탈, 랩을 가리지 않으며 그 나름대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얀코빅은 단지 단순모방 수준에 머물지 않는 뮤지션이다. 그의 앨범에는 가사만 바꾼 채 원곡을 거의 그대로 흉내낸 곡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음악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오리지널 곡이 더 많다. 특히 폴카 장르에서는 독보적인 위치

에 있다.

 ‘Running With Scissors’는 99년에 발표한 최근의 정규 앨범이다. 국내에 소량으로 수입돼 소개된 이 앨범은 패러디 음악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텍스트다. 퍼프 대디의 ‘It’s All About The Benjamins’를 가지고 빌 게이츠를 풍자한 듯한 ‘It’s All About The Pentiums’를 비롯해 ‘Wannabe’ ‘Getto Supastar’ ‘Walking On The Sun’ ‘Ray Of Right’ ‘The Dope Show’ ‘MMMBop’ 등을 메들리 형식을 빌어 폴카로 연주한 ‘Polka Power’가 있다. 또 그의 오리지널리티를 맛볼 수 있는 ‘Germs’ ‘The Weird Al Showtime’ 등이 수록돼 있다.

 사실 패러디 음악은 패러디 영화처럼 마니아를 위한 것이다. 원작의 완벽한 이해없이 완벽한 패러디는 있을 수 없다. 얀코빅은 패러디 그 이상이다. 만약 원작을 베끼기만 했다면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10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할 수 있었을까. 그는 패러디 음악을 패러디로써 접근한 것이 아니라 음악으로써 접근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기원/팝 칼럼니스트·드라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