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수동부품 산업>(3/끝)새틀을 짜자

 ‘수동부품산업의 경쟁력은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부품산업의 특성상 실질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데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한다.

 특정부품을 개발하고 시험생산하는 것까지는 쉬워도 가격경쟁력을 갖출 정도의 대규모 생산을 하면서 부품의 물질특성을 유지하는 것은 또다른 기술을 요하는 문제라는 것. 50여년 동안 세라믹이라는 소재와 씨름해온 일본 무라타의 기술 실체는 바로 이런 부분에 있다.

따라서 수동부품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기초 핵심소재의 개발과 양산을 통한 기초체력을 튼실히 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육성정책의 실효성을 높이자=지금까지의 부품소재 관련 정부정책은 단기 개발과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연구의 성공여부에만 평가초점이 맞춰져 있어 정부의 지원을 받는 연구목표 설정시 성공률을 높여 다음 과제를 따내기 위해 과제의 수준을 일부러 낮게 잡는 폐단까지 생겨났다.

 정부는 부품소재 육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5년 동안 2000억여원을 투자하는 일렉트로(Electro)0580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개발과제를 나열하고 과제당 지원금을 배분하는 평면적인 방식으로 이 사업이 진행된다면 ‘2005년까지 국산화율 80% 달성’이라는 목표가 또 다시 공염불이 될 수도 있다. 정책담당자인 산업자원부 심학봉 서기관은 “지금까지 단편적 개발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들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고 진단하면서 “개발자인 부품업체와 수요자인 세트업체를 동시에 과제에 포함시켜 시장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 에서 부품적용까지 보장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트-부품-소재기업의 네트워크화=일본의 부품산업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까닭은 소재업체들이 부품업체와 네트워크를 이루며 든든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무라타만 해도 전극재료업체인 쇼웨이를 비롯해 사카이케미컬·다이켄화학 등의 회사들이 뒤를 받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쓸 만한 부품업체’를 키우려는 세트업체가 없고 ‘쓸 만한 소재업체’를 육성하려는 부품업체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세트-부품-소재의 수직적 체계를 유지하며 가격인하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경향을 쇄신해 부품산업 전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횡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술을 축적해 의미있는 개발을 완료하고 나서 그 후유증으로 도산하고 마는 사례를 막아야 한다. 우수한 기술과 인력을 가지고 있는 좋은 회사를 대형화, 전문화된 ‘슈퍼스타’로 키울 수 있는 산업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부품소재업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매출 수천억원대의 소재업체가 없는 환경에서 세계 1·2위의 부품업체가 탄생할 수 없고, 매출 수조원대의 부품업체가 없는 환경에서 세계 1·2위의 세트업체가 탄생할 수 없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기초부터 탄탄히=컴퓨터와 휴대폰의 수출이 늘어나도 이에 상응하는 부품수입이 늘어나 무역수지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설령 부품의 국산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전해질이나 세라믹파우더 등 기초 핵심소재는 전량 수입에 의존, 수입유발형 국내 전자제품 수출 구조는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화학과의 한 교수는 “대학에서는 외부의 연구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대기업이나 정부가 지원을 줄이면 그만큼 기초과학 연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첨단이 좋다고들 하지만 결국 기초과학의 기반이 탄탄히 다져지지 않으면 껍데기만 화려한 속빈 강정이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한다. 이 지적을 정부와 업계 모두 곰곰이 숙고해 봐야 한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