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컨설팅만 `나홀로 호황`

 정보기술(IT)업계가 침체의 늪에 허덕이고 있지만 유독 IT컨설팅 시장은 불황을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비교적 투자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이 당초 계획했던 전사적자원관리(ERP)·고객관계관리(CRM) 등 굵직굵직한 사업을 예정대로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시장에는 늦게 진입한 딜로이트컨설팅코리아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PWC-엑센츄어의 2강체제도 최근들어 3각구도로 굳어지는 등 시장 지각변동 조짐이 확인된다. 또한 속속 출현하고 있는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한 선발업체간의 경쟁은 인맥을 내세운 ‘복마전’이나 다름없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여타 IT업종의 인력시장과 달리 업체간에는 컨설턴트 등 전문인력의 이동도 활발하다. IT컨설팅 시장만의 독특한 현상들이 물밑에서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ERP시장에서는 올 들어 SK그룹과 효성·LG화학·한화·KBS 등 대형 물량이 이어지고 있다. 하반기에도 현대기아차와 SK그룹 계열사, 수자원공사 등 일부 공기업들의 굵직한 대기물량이 기다리고 있다. 매출 조단위인 웬만한 대기업의 경우 ERP 구축비용은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천억원 단위에도 육박한다. 이 가운데 보통 몇달에 걸쳐 진행되는 컨설팅비용은 전체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게 업계의 통설. 통상적으로 컨설턴트당 하루평균 ‘일당’이 150만∼400만원에 달하는 것이다. 업계는 정확한 수치를 산정하긴 힘들지만 올해 ERP 컨설팅시장이 수천억원대라고 관측한다. CRM 컨설팅도 무시못할 시장이다. 이미 엑센츄어가 알리안츠제일생명과 LG캐피탈 컨설팅 프로젝트를 따냈고, PWC는 국민카드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금융권을 중심으로 대형 CRM 구축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 ERP나 CRM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e비즈니스 컨설팅도 최근에는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전략(재무) 컨설팅업체들인 매킨지·보스턴컨설팅·AT커니 등이 최근 IT컨설팅 영역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시장상황 때문이다.

컨설팅업계 관계자는 “요즘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은 IT를 수반하지 않는 순수 전략컨설팅은 발견하기 힘들다”면서 “IT컨설팅은 프로젝트 건수가 많을 뿐더러 계약금액도 매우 크다”고 말했다.

 ◇딜로이트의 약진=그동안 세계적으로 IT컨설팅시장은 엑센츄어(옛 앤더슨컨설팅)·PWC·딜로이트·KPMG·E&Y캡제미나이 등 5개사가 끌어왔던 게 사실이다. 이 가운데 국내외 시장의 선도그룹은 역시 PWC·엑센츄어·딜로이트컨설팅 등 소위 ‘빅3’. 특히 국내시장에서는 PWC와 엑센츄어가 ERP 컨설팅시장을 사실상 양분해 왔다. 그러나 딜로이트가 지난 99년 서울사무소 설립이후 올 들어 SK(주)·SK텔레콤·SK글로벌 등 SK그룹 ERP 물량을 거의 독식하고 효성 등 중견 그룹을 고객사로 확보하게 되면서 무서운 기세로 시장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다. 엑센츄어도 LG화학·한화 등에 이어 최근 KBS 프로젝트를 수주함으로써 예전의 아성을 지키고 있는 형국이다. PWC는 포항제철 ERP 프로젝트에 이어 한국타이어·태평양 등 중견 그룹사 물량을 추가, 현상유지는 이어가고 있다. 딜로이트의 가세로 국내 ERP 컨설팅시장이 메이저 3개사 중심구도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브랜드파워와 ‘인맥’에 의해 계약 수주여부가 판가름나는 컨설팅시장인만큼, 특히 딜로이트코리아의 각종 계약을 성사시켰던 주역인 박성일 회장의 향후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박 회장은 국내 컨설팅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SK 최태원 회장 등 재계 인물들과 폭넓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PWC코리아 최영상 사장이나 지금은 은퇴를 선언한 엑센츄어 이재형 사장도 컨설팅과 인연을 맺을 당시 박 회장의 후배였다. 이런 점에서 박 회장이 소속을 아예 서울사무소로 옮기고 본격적인 국내 영업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은 최근 컨설팅 업계 전반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PWC코리아의 최영상 사장이 자회사인 메타넷호라이즌과 그 출자사들을 내세워 컨설팅에서 시스템 구축, 유지보수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도 공격적인 장기생존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ERP·CRM 등 대형 IT프로젝트의 경우 세계적인 구현사례와 해당 컨설팅업체의 인맥이 수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면서 “현재의 3강체제는 앞으로 더욱 공고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이들을 중심으로 치열한 인맥싸움이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극심한 인력이동=최근 침체된 IT시장에서 컨설팅 분야만큼 대규모 인력이동이 잦은 곳도 드물다. 엑센츄어·PWC·딜로이트 등 3대 메이저와 삼성SDS·삼일컨설팅 등 주요 컨설팅업체 소속 컨설턴트들은 요즘도 한꺼번에 수십명씩 경쟁사로 옮기기도 한다. ERP·CRM 등 전문 컨설턴트의 절대 필요인력이 원래 부족한데다 프로젝트가 생길 때마다 소요되는 인력은 결국 유사 경쟁업체로부터 수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엑센츄어·PWC·딜로이트 등 세계적인 업체들과 삼일컨설팅·삼성SDS 등 국내 업체간에는 컨설턴트 유치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으며 심지어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다. 특히 올 들어서는 다수 프로젝트를 수주한 딜로이트로 대거 이동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IT 컨설팅시장의 경쟁양상은 단기간내 엎치락 뒤치락할 수 있는 지각변동이 특히 심한 분야”라며 “이와 함께 컨설턴트로서도 지속적인 몸값 관리를 위해서는 많은 곳에서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한다는 직업적 속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장변화=3강구도 정립과 함께 IT컨설팅 시장에는 최근 몇몇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시스템통합(SI)시장의 급속 침체로 기존 SI업체 컨설팅사업이 패키지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삼성SDS·포스데이타·SKC&C·LGEDS 등은 이같은 방향을 공식 선언하고 패키지 컨설팅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서비스제공(ASP)업과 컨설팅을 결합한 ‘인력파견’ 형태의 전문업체도 신규 시장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시너지C&C·링크웨어·트러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