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톱박스 홍수-소비자들은 헷갈린다.’
언제부턴가 가정용 전자제품을 말할 때 세트톱박스라는 단어가 부쩍 자주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 위성방송 수신기와 가정용 홈네트워킹 서버 및 게이트웨이 장비는 물론이고 심지어 케이블방송 수신기와 DVD플레이어 및 PVR(Personal Video Recorder)까지 세트톱박스라는 이름으로 통칭되고 있는 것.
모두가 다른 기능을 하고 있는 데도 세트톱박스란 이름으로 통칭되는 것은 기능의 유사성 때문이다. 세트톱박스란 말 그대로 TV나 오디오 등 기존 가전제품 위에 놓이는 제어용 박스를 일컫는 것으로 기존 제품의 기능에 부가기능 및 보조기능을 제공하는 제품. 위성방송 수신기부터 DVD플레이어까지 모두 이런 의미에서 세트톱박스로 불리고 있다.
이들 제품은 자체 디스플레이나 스피커 등을 내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제품만으로는 어떤 정보도 확인하거나 열람할 수 없는 상태다. 즉, 세트톱박스는 디스플레이나 오디오 등과 결합한 제대로된 디지털가전이 본격 개화하기 전까지 보조적인 기능을 수행할 과도기 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존 제품안에 통합하기 어려운 다양한 디지털 데이터 수신 및 아날로그 데이터의 디지털 변환 등 다양한 기능을 기존 제품에 통합하지 않고도 소비자나 사업자의 특수목적에 맞도록 기기를 구성하기가 용이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케이블방송 수신기와 디지털 위성방송 수신기. 이들 제품이 담고 있는 기능은 사실 TV에 충분히 내장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이 기능을 위해서 TV를 새로 생산하거나 구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별도의 기기로 생산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다른 기능을 하는 제품들이 세트톱박스로 불리는 것을 무척이나 헷갈려 한다. 위성방송 수신기도 세트톱박스, 홈게이트웨이 서버도 세트톱박스, DVD플레이어도 세트톱박스라니 정신이 없을 만도 하다.
업계 관계자들도 이런 정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나름대로 이런 이름을 택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 디지털가전은 모든 기능이 복합화되는 추세에 있다. 부품 하나만 추가해도 카드 하나만 바꿔 달아도 다른 제품이 된다. 하지만 이들 제품은 모두 특화된 별도 시장을 구축할 만큼 규모가 크지 않으며 과도기 시장에 불과하다. 따라서 모두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보다 세트톱박스라는 명칭 하에 시장 트렌드나 소비자 요구에 따라 필요한 기능을 접목시킨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게 된다.”
위성방송 수신기에 DVD플레이어 기능을 접목한 제품을 수신기겸용 DVD플레이어라고 부를 수 없고, PVR 기능과 DVD플레이어에 케이블방송 수신기능을 넣은 제품을 3기능 콤보형 DVD플레이어라 부를 수도 없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가정용 디지털가전을 모두 네트워크로 묶어 모든 정보를 하나의 서버에서 통합관리할 수 있는 홈네크워킹용 세트톱박스도 등장할 전망이다. 방송이나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제어하는 세트톱박스와 통합된 제품을 구상하는 업체도 있다. 수년 내에 주부가 부엌에서 인터넷 냉장고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디지털 위성방송을 수신하는 풍경도 낯설지 않게 될 것이다.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