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북한의 신의주와 중국의 단둥 사이를 연결하는 압록강 다리. 남북IT교류 현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남북IT교류 사업은 여러가지 대내외적 제약 때문에 아직은 이 사진처럼 ‘강건너’ 북한땅을 바라보는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다. 다리 건너는 신의주시 전경이다. <사진=정동수기자 dschung@etnews.co.kr>
◆6·15선언 이후 남과 북 사이 정보기술(IT)교류 협력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남한의 자본과 북한의 인력이 결합하는 방식의 IT교류사업은 가장 비정치적이면서도 가장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남북 양방에서 초미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50여년 동안의 분단상황에서 비롯된 사회적·기술적 이질감은 남북간의 거대한 정보격차 그리고 산업과 기술표준의 차이를 낳았으며 나아가 교류의 진척을 더디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지난 6월부터 한국언론재단의 지원하에 특별 기획취재팀을 구성해 현재 북한-중국-한국 등 3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남북IT교류 현장을 입체 취재하는 한편, 교류확대를 저해하는 요인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각적인 분석을 시도하였다. 또 남북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바람직한 정부정책의 방향과 교류 접근방법도 제시할 계획이다. 이 기획물은 앞으로 10회에 걸쳐 매주 수요일 독자여러분을 찾아가게 된다.◆
◆특별기획취재팀
팀장: 서현진 부장(인터넷부)
정동수 기자(사진부)
온기홍 기자(기획조사부)
유형준 기자(IT부)
홍기범 기자(증권금융부)
◆글 싣는 순서
제1부
-제1회:남북IT교류,이제부터 시작이다
-제2회:‘한글’과 ‘조선글’의 차이
-제3회:IT교류협력의 국제 장벽, ‘바세나르 협약’
-제4회:남한의 ‘대북 IT전략’ 바로보기
-제5회:북한의 ‘대남 IT전략’ 바로보기
남북IT교류, 이제부터 시작이다
IT교류에 대한 남북한 양측의 관심은 그 시기와 출발 상황에는 차이가 있지만 서로를 간절히 원한다는 차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남한에서는 정보화 열기가 뜨거지워지기 시작한 90년대 중반부터 중국 동포들을 매개로 학술교류 차원에서 이 분야에 관심을 보여왔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관심이 대내외적으로 표명되기 시작한 99년부터 체제 강화와 경제난 극복이라는 목표로 IT교류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교류하면서 남북한 모두는 IT교류가 통일문제나 경제협력 부문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공존공생을 지향하는 접근방식이라는 데 쉽게 공감했다. 가장 비정치적이면서도 경제적으로는 교류협력 효과가 가장 극대화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 위에서 탄생한 것이 지난 8월 2일 제3국인 중국의 단둥에서 극적으로 출범했던 남북 합작 IT개발 용역회사 ‘하나프로그람센터’다. 남한이 자본과 경영노하우를, 북측이 기술인력을 담보하는 형태로 출범한 이 합작사는 지난 수년간 진행돼 온 남북IT교류 과정에서 가장 많이 논의됐던 일종의 표준형 비즈니스 모델이 적용된 경우다.
하나프로그람센터의 출범과정중 나타났듯 IT교류는 그동안 남북 정세에 비교적 무감하다는 점에서 비정치적인 통일운동의 단초로, 또 경제협력의 실질적 효과 창출방법으로 대두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교류가 이미 80년대부터 추진돼 온 경공업분야 임가공이나 90년대의 전자제품 임가공 사업에 뒤져 출발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평양이나 신의주와 같은 북한내 대도시를 놔두고 왜 단둥이 하나프로그람센터의 입지가 됐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초의 남북 IT합작사나 다름없는 하나프로그람센터의 근거지로 단둥이 결정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략 네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바세나르협약(The Wassenaar Arrangement)이라는 보이지 않는 국제적인 ‘압력’이 작용했다. 공산권 국가에 대한 전략물자 반출(수출)을 규제했던 코콤(COCOM)이 구소련의 붕괴로 더 이상 효력을 발생할 수 없게 되자, 제재대상을 북한·이라크·리비아 등 이른바 불량국가들로 규정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해 새로 출범시킨 것이 바세나르협약이다. 물론 당사국인 남한도 이 협약의 회원국으로 가입돼 있다.
바세나르협약에는 구체적으로 규제 품목을 명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펜티엄급 이상 컴퓨터의 경우 고민감품목에 분류되는 것이 원칙이어서 북한 등에 대한 반출이 원천 봉쇄되고 있다. 여기에는 협약의 맹주인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1차적으로는 회원국으로서 남한이 대북 규제품목을 (알아서) 결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하나프로그람센터가 곧바로 평양이나 신의주지역에 들어서지 못한 이유 가운데는 센터 내부에서 사용할 각종 개발 및 교육장비로 이용해야하는 고성능 컴퓨터기기의 반입이 불가한 까닭도 있었던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바세나르협약은 남북IT교류에서 최대의 장벽으로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두번째는 서로 다른 체제 극복을 위한 남북한 당국의 노력 부족이다. 남북한 당국은 그동안 IT교류의 당위성만 주창해왔지, 엄존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데는 소흘했다. 제도의 미흡은 특히 IT교류사업의 엔진이 돼줄 남한기업들의 자본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관련 기업들은 그동안 대북진출 과정에서 지적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초기 대북투자정책을 개발하고 지휘할 수 있는 공신력있는 대북 교섭창구가 전무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저마다 ‘개별적’으로 북한의 대남공식 경협창구인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의 문을 두드렸다. 하나프로그람센터와 같은 극히 일부의 결실이 있긴 했지만 대다수는 기업 신뢰도에 스스로 먹칠을 가하면서 중도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남북간에는 당국간 투자보전협정이나 이중과세방지협정같은 가장 기본적인 협약조차도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나마 존재하는 북한의 합영법은 체제수호 우선이라는 정치적 고려 때문에 남한기업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극히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절름발이 법이었다. 하나프로그람센터가 북한내에 입지할 수 없었던 또다른 이유 역시 이처럼 투자보전을 담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번째 이유는 IT의 기술적 특성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문제는 교류 이전에 남북한 모두 보다 근본적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공동 과제이기도 하다. 현재 남북간 교류는 합작회사가 설립됐을 만큼 급진전되고 있지만 정작 IT환경은 PC상에서 한글(조선글) 문서 한 장조차 호환이 불가능할 만큼 시스템적으로 꽉 막혀있는 상황이다. 국제표준화기구들은 이러한 상황을 놓고 남북한이 직접 만나 표준화를 이끌어내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자존심이 걸려있는 이 문제는 양측이 상대방에 대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마지막 네번째로는 북한 내부의 시장 상황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여러 정황을 놓고 봤을 때 인구가 밀집돼 있는 평양지역만 하더라도 북한당국이 조만간 체제를 완전개방하지 않는 한 자체 IT시장 형성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 따라서 당장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남한기업들로서는 5∼10년후를 내다보며 투자할 기업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IT교류를 희망하는 기업들이 일단은 그 근거지를 교통입지가 좋은 베이징이나 북중 접경지역인 단둥에 두려하는 것은 여차하면 시장목표를 중국으로 선회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여러 환경적·기술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늦게 시작된 남북IT교류가 급진전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여타 분야에 비해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여간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길게 보아 남북IT교류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를 벗어났을 뿐이다. 지나온 길보다는 남북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걸어가야 할 길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도 부지기수다. 또 북한에 대한 요구보다는 남한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이제는 IT교류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새로운 접근방식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체제나 자본 우월적인 선입견을 버리고 기술적·현실적 조건들에 대한 진지한 점검과 보완이 따라야 할 때다. <특별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