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IT강국의 전제 조건

◆정태명 성균관대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tmchung@ece.skku.ac.kr)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초고속망 환경이 급속히 확장되면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스스로 IT 강국이라고 자부하기도 한다. ‘IT 강국’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2800만의 인터넷 사용인구와 600만의 초고속망 가입자를 대상으로 수천억원 규모의 B2C 시장과 수십조원 규모의 B2B 시장이 형성되는 것으로 IT 강국이 되는 것일까.

 사실상 지난 수년간 우리는 IT 강국이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 왔다. 그러나 지금쯤은 정보화를 향해 치닫던 숨을 잠시 고르고 ‘진정한 IT 강국’의 모습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IT 강국은 IT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음식의 맛이 뛰어나지 않은 좋은 음식점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처럼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IT 강국은 종이 호랑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일등 상품은 76개로 미국의 924개나 중국의 460개에 비해 많이 뒤떨어져 있다. 물론 일등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IT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에서 일등급의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어느 나라도 갖지 못한 IT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무선 콘텐츠를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에 적합하며 세계 최고라 자부하는 초고속망도 전자상거래 등의 응용 분야 확대에 적격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유무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차세대 유무선 통합망 개발에 최적의 실험 환경을 제공해 준다. 다른 나라들이 우리의 IT 인프라를 자신의 테스트베드로 사용하고 싶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IT 인프라를 다른 나라의 실험 환경으로 내주기보다는 이를 백분 활용하여 우수한 우리의 기술들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일등급 상품에 접근한 특정 IT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서 일등기술을 만들어 내야 한다. 특히 정보보호·게임콘텐츠·원격교육 등 세계 수준에 근접한 기술들을 집중 개발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국가를 경영하는 정부의 구조와 조직이 IT 강국에 걸맞은 유연성과 효율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현재의 정부 구조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IT 기술과 환경에 적응하는 IT 강국을 일궈낼 수 없다.

 실제로 IT 강국을 표방하는 정부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부처간의 이견으로 표류하는 것은 IT를 총괄하고 책임지는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로 전자상거래가 생활화되기 위해서는 정보 인프라 구축, 전자상거래 환경과 질서 유지, 전자상거래 상품인 콘텐츠 개발 및 보급, 세제 적용과 관련된 사항들이 맞물려 돌아가도록 되어 있고 여러 부처의 업무가 중복되어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을 총괄하고 조정할 수 있는 강력한 부처를 우리의 정부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클린턴 정부에서는 고어 부통령이 중심이 되어 정보화 사업을 추진해왔다. IT 정책들을 총괄하는 부서는 IT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하다고 볼 수 있으므로 우리의 정부도 강력한 힘을 가진 IT 수석 혹은 IT 부총리 제도를 신설하기를 제안한다.

 또한 IT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정부의 구조적 변화가 논의되어야 한다. 사회는 산업사회에서 IT 사회로 발전하고 있음에도 산업사회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농부의 옷을 입고 우주선을 운전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하루빨리 IT 사회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정부 구조로 개선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IT 강국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국민 전체가 참여하는 수준 높은 IT 문화의 정착이라 할 수 있다. 현실 공간에서는 체면유지를 위해 말과 행동을 삼가는 사람이 비대면 사회인 사이버공간에서는 타인을 비난하고 욕설을 일삼는 네티즌을 보면서 IT 강국의 요원함을 보는 것은 결국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IT 환경을 통해 아름다운 예술과 음악을 찾기보다는 어떻게 나의 아이들을 음란물과 폭력에서 보호해야 하는지 걱정만 한다면 IT 강국의 길은 멀어져만 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화의 혜택은 기본적으로 국민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지역적인 정보화의 격차, 빈곤층에 주어지는 정보 인프라의 열악성, 연령층간에 주어지는 정보화 혜택의 불공평 등으로 결국 절름발이 IT 강국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정한 IT 강국이 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인 것이다.

 ‘우수한 기술의 개발, IT 국가를 이끄는 유연하고 효율적인 정부, 그리고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IT 문화’, 이러한 것들이 갖추어지고 진정한 IT 강국으로 전 세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날이 곧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