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컴퍼니>벤처캐피털업계 `영화 투자 트로이카`

 ‘쉬리’ ‘공동경비구역JSA’ ‘친구’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지난 98년부터 시작된 한국 영화 ‘대박’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화제작들이다. 영화배우들의 삭발투쟁으로 사수했던 스크린쿼터제로 겨우 연명을 해야했던 한국 영화가 이제 연말이면 50%의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연이은 흥행작들을 쏟아내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서 국내 영화가 시장 점유율 50%를 점유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없다는 게 영화계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심지어 문화적 자긍심이 세계 최고라는 프랑스조차도 이같은 기록을 보이진 못했다. 국민들의 문화적 자긍심과 그 틀을 잡아가고 있는 문화산업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같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가능케 한 것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벤처캐피털의 적극적인 투자가 한국판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중에서도 무한기술투자 최재원 이사, KTB네트워크 하성근 팀장, 산은캐피탈 윤정석 팀장 등 3명의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영화투자 트로이카’로 불린다.

 가장 먼저 한국 영화 중흥의 기치를 세운 이는 산은캐피탈의 윤정석 엔터테인먼트 팀장(39).

 윤 팀장의 작품은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첫 작품인 ‘쉬리’에 대한 투자로 알려졌다.

 윤 팀장의 벤처캐피털리스트 생활은 지난 88년 한국기술금융(합병으로 산은캐피탈로 변경)에서 시작됐다. 텔슨전자, 텔슨정보통신, 케이엠더블유, 옥토그라프 등이 그가 투자했던 기업들이다. 그러나 97년 IMF가 터지면서 벤처투자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됐고 윤 팀장이 눈을 돌린 곳이 문화산업이었다. 이중 영화산업은 투자 회수기간이 짧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화 투자를 시작한 지 2번째 작품이 ‘쉬리’였다. 이외에도 비천무, 용가리 등에 투자하며 산은캐피탈이 영화산업에 눈을 뜨도록 만들었다.

 다음 계보를 잇는 작품이 ‘공동경비구역JSA’다. JSA는 KTB네트워크 하성근 팀장(36)의 투자 작품이다.

 하 팀장은 지난 가을부터 올초까지 ‘공동경비구역JSA’ ‘단적비연수’ ‘번지점프를 하다’ 등에 잇따라 투자해 성공을 거뒀다. 또 최근에는 부부들 사이에 ‘1억원 외도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있는 ‘베사메무쵸’를 비롯해 하반기 최고의 흥행작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무사’도 하 팀장이 투자한 작품이다.

 벤처캐피털업계에서는 벌써부터 하 팀장이 이번에도 연타석 홈런을 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 팀장은 윤 팀장이나 최재원 이사와는 달리 KTB네트워크가 지난해 2월 삼성영상사업단에서 스카우트한 케이스다. 하 팀장의 가세로 KTB네트워크는 현재 영화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게임, 음반 등 전체적인 문화산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하 팀장은 “국내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흔히 대박 분야로 분류되는 코믹, 액션영화 등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품에 차별화된 투자를 단행해 한국영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제치고 전국 관객 400만명을 돌파한 ‘신라의 달밤’. 가장 최근에 한국영화의 흥행을 이어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무한기술투자 최재원 이사(34)가 투자를 결정했다. 지난 99년 ‘쉬리’ 돌풍으로 시작해 ‘공동경비구역JSA’ ‘친구’의 계보를 잇는 한국영화의 흥행작이면서 ‘쉬리’와 ‘공동경비구역JSA’와는 맥을 달리하는 코믹물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한국영화의 흥행 분야를 넓힌 셈이다. 요즘 신세대 사이에 새로운 유행을 창조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개봉 한달여만에 관객 400만명을 돌파하고 있는 ‘엽기적인 그녀’도 ‘신라의 달밤’이 넓혀 놓은 흥행 바람을 탔다는 분석을 받을 정도다.

 최 이사는 이외에도 ‘플란다스의 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디안썸머’ ‘썸머타임’ ‘화산고’ ‘선물’ 등에 투자해 무한기술투자의 영화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최 이사 역시 다음달 개봉예정인 제작비 70여억원의 블록버스터 ‘무사’에 투자, 어느 정도의 관객을 동원할지 또 다른 관심을 받고 있다.

 벤처캐피털업체의 자금이 흘러들면서 만들어진 연이은 대박으로 뜨겁게 달궈진 충무로. 지금도 충무로의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를 제치고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3인방은 여기에 결코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영화가 한 차원 높은 경쟁력을 갖춘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인프라 측면에서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언제고 지금의 흥행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은 최근 들어 영화뿐만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산업 전반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하드웨어, 즉 시스템(인프라)을 만들어내는 산업에 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갈 또 다른 대박 신화가 기다려진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