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체구에 짧게 깎은 머리, 부리부리한 눈에 굳게 다문 입, 무엇을 물어도 단답형으로 결론과 핵심만 잘라 말하는 지씨텍의 이정학 사장(38)은 재주 많은 곰을 연상케 했다. 창업 스토리나 직장 동료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청년의 순수한 열정과 섬세함이 묻어났다. 이 사장의 전공 분야인 아케이드(오락실용)게임에 대한 비전을 말할 때는 MBA 석사다운 날까로운 통찰력도 느낄 수 있었다.
경희대 경영대학원을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MBA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SEIT 과정까지 마친 이 사장이 ‘청계천 뒷골목사업’ 정도로 취급받는 아케이드게임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이유를 물어봤다.
“어렸을 때부터 유독 전자오락을 좋아했습니다. 방과 후 동생과 함께 전자오락실에 가서 갤러그와 제비우스를 밤늦도록 하다가 부모님께 혼도 많이 났습니다.”
아케이드게임이 좋아서, 그것도 아케이드게임기를 만들어보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는 이 사장은 실제로 한국산 아케이드게임만을 고집했다. 지난 98년 2월 동생 이재성씨와 함께 지씨텍을 설립한 이 사장은 다른 아케이드게임업체들이 일본산을 수입·판매하는 것과 달리 국산 게임 개발에 매달렸다.
“일본산 보드를 들여와 세트를 조립해 팔거나 모방 제품을 만들면 당장은 쉽게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시간 낭비입니다. 자체적으로 아케이드게임기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어느 한순간 시장에서 퇴출되는 위기를 맞을 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아케이드게임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장은 창업과 동시에 VR·모션 캡처·네트워크·3D 그래픽·시뮬레이터 등 아케이드게임기 개발에 필요한 요소기술을 확보하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마련했다. 2003년까지 단계적으로 요소기술을 확보해가면서 독창적인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순차적인 전략이었다. 이 사장은 특히 향후 아케이드게임의 플랫폼이 전용 보드가 아닌 PC 기반으로 바뀔 것을 확신했다.
“PC 관련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아케이드게임 전용 보드의 성능을 따라잡을 것이며 이 시점에 이르면 가격이나 시스템 확장성 등에서 뛰어난 PC 기반의 아케이드게임기들이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고 관련 기술 축적에 회사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이 사장이 아케이드게임기 유통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서울을 마다하고 대전 대덕밸리에서 창업한 것도 PC 기반의 요소기술을 확보하려면 민간 연구소와 대학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1년 6개월여의 노력 끝에 지씨텍은 지난 99년 상반기 체감형 낚시 시뮬레이션게임기인 ‘판타지 오브 피싱’을 개발, 시장에 데뷔했다. 당시에 DDR를 비롯한 댄스게임기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르나 소재 등에서 전혀 다른 ‘판타지 오브 피싱’은 파격이라는 수준을 넘어 무모해보이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 사장 특유의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사용자들은 PC게임이나 비디오게임이 줄 수 없는 체감 욕구를 만족하기 위해 아케이드게임기를 찾습니다. 당시 DDR와 같은 댄스게임기들이 주류를 이룬 것은 사실이었지만 인기가 한풀 꺾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용자들은 좀더 다양한 형태의 체감을 원했고 낚시를 소재로 한 체감형 게임기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이 사장의 판단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판타지 오브 피싱’은 99년 9월 영국에서 열린 ECTS에서 국내외 업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연말에는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아케이드 부문 최고상을 받았다. 판타지 오브 피싱의 판매도 크게 늘어 상반기까지 40억원 가까운 돈을 벌어 들였다.
이후 지씨텍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2000년 ‘액추얼 파이터’, 2001년 ‘스커드인코리아’ 등 대박이 터지면서 지씨텍의 매출은 수직상승했다. 9월 결산법인인 지씨텍은 98년 7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99년 12억원, 2000년 72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전년에 비해 2.5배 많은 183억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자체 기술을 바탕으로 게임기를 개발하기 때문에 매출 대비 영업이익과 순이익 비율이 높다. 지난해 11억9000만원의 순이익을 낸 것을 비롯해 98년 이후 3년 연속 흑자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 같은 사업 성과를 바탕으로 지씨텍은 지난 8월 중순 코스닥 등록을 위한 예비심사를 청구해 쉽게 통과했다.
“코스닥 등록은 회사가 발전해가는 하나의 과정일뿐 목표 자체는 아닙니다.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을 미리 짜 놓고 사업을 벌여왔기 때문에 자금 여력도 충분하지만 코스닥에 등록한 것은 해외 수출에 있어 여러 가지 장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고 내수 기반도 만들어놨으니 앞으로는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코스닥 등록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 사장은 베네수엘라 등지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대규모 조립라인을 갖추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유럽과 일본 지사 설립도 추진 중이다.
“전통적인 아케이드 강국인 일본은 이제 늙은 호랑이입니다. 일본 아케이드 시장이 몇 년 동안 침체하면서 대형업체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습니다. 개발 여력도 없고 경쟁력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일부 업체의 경우 아케이드사업을 포기했고 상당수 업체들이 축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술 개발력에 있어 일본 업체에 뒤지지 않는 한국 업체에게 일본을 이길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온 것입니다. 최근 들어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남미와 미국 시장을 개척한다면 한국이 아케이드게임 강국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 사장은 2년 안에 일본 남코·코나미와 함께 세계 3대 아케이드 메이저로 등극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재주 많고 뚝심 좋은 곰은 늙은 호랑이를 이길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약력>
△82년 대전 충남고 졸업 △86년 경희대 정경대학 무역학과 졸업 △87년 경희대 대학원 경영학과 3기 수료 △89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 MBA 석사 △99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SEIT 과정 수료 △98년 지씨텍 경영이사 △99년 로커 대표이사 △99년 한밭경제대상 수상(중소기업청장표창), 한밭경제대상 벤처기업부문 수상(대전광역시청), 대한민국 게임대상 수상(문화관광부·전자신문사), 게임종합지원센터 수출상 수상 △2000년 제2회 우수게임사전제작지원작품 대상 수상(문화관광부-‘Mechanic Sports ROCCER’), 이달의 우수게임 선정(문화관광부-‘Actual Fight2’) △2001년 이달의 우수게임 선정(문화관광부-‘Scud In Korea 2002’) △2001년 지씨텍 대표이사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