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타워]셀레라지노믹스의 변신

 지금은 꿈 같은 일이지만 나스닥지수가 4000선을 넘어서는 등 천정부지로 치솟던 지난 99년 말, 새로운 산업을 이끌어내는 미국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생명공학(BT)을 차세대 신기술로 지목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4개월 후 미국 바이오 벤처기업인 셀레라지노믹스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게놈지도을 작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해 전세계 바이오열풍에 불을 댕겼다.

 그러면서 셀레라지노믹스측은 인간게놈지도 작성으로 암 등과 같은 불치병의 완치는 물론 알츠하미머병과 같은 유전성 질환의 싹을 자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한창 연구중이던 미국 국립보건원(NIH) 등을 중심으로 한 7개국 공동연구진이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 연구진의 이같은 자신감에 미국 국민이나 우리나라 국민이나 할 것 없이 ‘오래 버티면 아파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에 들떠 있었지만 적어도 30년 안에는 실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전체의 각 기능을 정확히 분석해내는 데는 앞으로도 수십년이 걸리고 암치료랄지 유전병치료 등은 어쩌면 다음 세기에 가서야 가능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인간유전체지도를 바탕으로 이른바 생명정보학으로 불리는 바이오인포믹스 사업에 주력하겠다며 미 전역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던 셀레라지노믹스는 당초 계획과는 달리 현재 엉뚱한 곳에서 큰 수입을 올리고 있다.

 전세계에 게놈연구 붐을 일으켜 놓고서는 자체개발한 게놈분석시스템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10여대가 들어 온 적이 있는 이 시스템의 대당 판매가격은 10억원. 웬만한 국가나 대학연구실 치고 이 회사의 분석기를 도입하지 않은 곳이 없다. 치고 빠지는 전략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300대의 유전체분석기를 네트워크로 슈퍼컴퓨터와 연결해 회사 전체가 하나의 슈퍼컴퓨터 덩어리 그 자체인 셀레라지노믹스는 막대한 연구비가 투입되는 후속 유전체기능연구 대신 차세대 분석장비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 회사가 갖고 있는 슈퍼컴퓨터의 용량이나 하부 서버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바이오 벤처기업이라기보다는 슈퍼컴을 바탕으로 한 거대한 IT시스템회사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컴팩 등 유수의 IT관련 기업이 변신을 도와주고 있다.

 실제로 미 에너지부는 얼마전 셀레라지노믹스·컴팩·샌디아연구소 3사를 통해 100테라플롭스급 슈퍼컴퓨터를 만들고, 오는 2010년 안에 무려 1000테라플롭스급 컴퓨터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혀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100테라급 슈퍼컴퓨터는 농구장 5배 크기 공간에 컴팩 알파CPU 1만2000개를 탑재한 375대의 알파SC컴퓨터와 600테라바이트 가량의 컴팩 저장장치, 6000개가 넘는 광케이블이 소요될 예정이다.

  어쨌든 이같은 변신을 통해 그동안 거품이 빠지면서 투자자들의 눈치를 봐야 했던 이 회사로서는 할말이 있게 됐다. 인간게놈연구를 빌미로 엄청난 투자를 받았던 셀레라지노믹스가 BT와 IT의 적절한 조화로 순발력있는 사업전략 수정을 통해 ‘사업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걸 보여준 셈이다. 경영환경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IT·BT 벤처기업들일수록 주변을 잘 챙겨야 할 때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