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평온한 일요일 아침 7시 30분 하와이. 몇 기의 전투기들이 낮은 고도를 유지하며 다가선다. 몇 분 후 미 전함 캘리포니아호 선체에 두 발의 폭탄이 투하된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조용하게 시작됐다. 그리고 메가톤급으로 다가왔다.’
지난달 11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미국 어린이 프로 전문 지상파방송인 키즈워너(Kids! WB)에선 애니메이션 ‘큐빅스’가 방영됐다. 며칠 후 시청률이 발표됐다. 지상파 네트워크 어린이 프로그램 부문 시청률 2위. 한국 토종 애니메이션의 미국 진출은 조용했다. 그리고 미국을 달구기 시작했다.
국내 토종 애니메이션의 미국 안방 공략이 시작됐다. 시네픽스의 ‘큐빅스’와 빅필름의 ‘엘리시움’이 그 선봉에 섰다.
TV 시리즈인 큐빅스는 로봇을 소재로 한 작품이지만 폭력과는 거리가 멀다. 애완 로봇 큐빅스와 하늘이의 따뜻한 우정을 그리고 있다. 로봇과 소년이 친구대 친구로 서로 도우며 모험을 펼친다. 뻔한 스토리라서 따분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큐빅스 제1화를 보면 이런 우려는 말끔하게 지워진다. 사건 진행이 빠르고 아이들의 이목을 끄는 독특한 로봇들이 잇따라 등장한다.
큐빅스는 이미 미국 어린이들 사이에 붐으로 안착했다. 큐빅스의 미국 내 배급을 맡고 있는 포키즈엔터테인먼트는 큐빅스 1화 시청률이 2∼11세 남자 어린이 프로그램 부문 1위, 6∼11세 여자 어린이 프로그램 부문 2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또 미국 완구업체 트렌드마스터, 프랜차이즈인 버거킹에서 캐릭터 상품이 나와 어린이들에게 큐빅스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큐빅스에 이어 미국의 동심을 훔치기 위해 엘리시움이 발진 준비를 하고 있다. 극장용 3D 애니메이션인 엘리시움은 12월 중순 캐나다 및 미국 지역 300여개 영화관에 걸릴 예정이다. 큐빅스가 지상파TV를 통해 미국을 점령해가고 있는 ‘지상군’이라면 엘리시움은 영화관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을 알려나갈 ‘공군’인 셈이다.
엘리시움 역시 큐빅스와 마찬가지로 로봇물이다. 뉴욕 중심가에서 피자 배달을 하는 ‘반’은 18세의 평범한 소년이다. 하지만 당시 지구는 엘리시움이란 행성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급박한 상황. 여기에 지구를 구할 4명의 기사에 대한 예언이 이뤄지고 그 첫번째 기사가 바로 반이다.
역시 상투적인 줄거리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이런 류의 ‘뻔한 정통 로봇물’이 드물어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높다. 특히 10대 후반에 어필할 만큼의 화려한 그래픽을 갖춰 예상밖의 호응도 은근히 기대된다.
뒤이어 루크필름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스퀴시’, 필름앤웍스양철집의 ‘원더풀데이즈’가 미국 내 개봉을 준비 중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애니메이션 본고장 미국에서 바람몰이에 나서고 있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김문조 교수는 “문화는 정치·경제와 달리 강대국의 논리가 힘을 발휘하기 힘든 분야다. 제3세계가 문화상품을 통해 문화 강국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이런 바탕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국 진출은 국내 문화산업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고 말했다.
재패니메이션과는 다른, 따뜻한 이미지의 한국 로봇물이 미국 시장에 뿌리내리는 날이 머지않았다.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