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세상 화제와 이슈](14)폐PC-`애물단지` 처리 사회문제로 부상

 유럽의회가 올해 폐PC 처리를 PC제조업체의 책임으로 돌리는 관련 법률을 비준하고 국내에서도 키보드·마우스 분리판매 제도를 도입하는 등 폐PC 처리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유럽의회는 올해 PC제조업체가 중고제품을 회수하고 잠재적으로 위험한 폐기물을 단계적으로 제거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을 비준할 예정이며 세계 최대 PC보급률을 자랑하는 미국에서도 주별로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환경부를 중심으로 이달부터 마우스와 키보드를 PC 본체와 분리판매하는 제도를 행망용 PC부터 시험적으로 도입하는 한편 오는 2003년부터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PC에도 적용, 폐PC 처리와 관련된 정책의 강도를 높일 계획이다.

 그러나 PC업체들은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법안에 별로 할말이 없다는 말뿐, 대응책 마련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폐PC 처리와 관련, 정부는 올해부터 각종 제도와 법규를 마련하고 있다. 그 첫번째가 이달부터 시행되는 키보드·마우스 분리판매 제도. 키보드와 마우스를 본체와 분리해 판매함으로써 쓰레기 배출량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이 제도는 행망용 PC를 시작으로 일반 소비자 PC로 확대적용될 예정이다. 하지만 강제규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부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또 예치금 제도를 기반으로 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로 개정하면서 폐PC 처리문제에 적극 대처한다는 입장이다.

 예치금제도란 폐기물을 다량발생시키는 제품의 제조업체 및 수입업자에게 사용후의 회수 및 재활용 비용을 미리 부과한 후 회수 등의 실적에 따라 납부금을 돌려주는 것으로 TV·냉장고·에어컨 등 가전제품이 해당품목이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는 기본적으로 제조업체에 폐기물 회수와 재활용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것으로 예치금제도보다 제조업체의 의무를 더욱 구체화한 것이 특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예치금제도의 경우 회수율이 40% 정도로 낮았는데 이는 예치금을 면죄부 정도로 생각하는 업체들의 인식 때문”이라며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는 이런 단점을 보완, 제조업체에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와 책임을 부과하게 된다”고 말했다.

 PC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의 적용을 받게 되면 PC제조업체들은 중고제품을 회수하고 이를 재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며 생산단계에서부터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도록 생산과정 및 시설을 개선해야 한다. 또 포장과 부품 등 환경오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이 법안은 정부가 제조업체에 회수 및 재활용 처리 목표를 정해주고 이를 채우지 못했을 경우 과태료 등 불이익을 부가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PC가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우려도 있다. 즉 지난해 PC가 예치금제도의 해당품목으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비용부담이 크고 국내 PC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산자부와 업계 반발에 따라 적용이 보류된 데서 보듯,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적용 역시 미지수라는 것. 그러나 환경부 관계자는 폐PC 처리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압력과 세계적인 환경정책의 추세를 더이상 거스를 수 없고 이에따라 2003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부터는 PC도 적용대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법 시행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국내 PC업체들은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개정안이 아직 국회 상임위에 계류중인 만큼 통과여부가 미지수고 법안을 살펴보더라도 해당품목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없기 때문에 좀더 기다려 보겠다는 것. 법안이 확정이나 되면 그때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PC업체들은 경기침체로 매출 둔화와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폐PC 처리까지 떠안게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또 환경보호 차원에서 이같은 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마진이 3%도 채 안되는 현 PC산업의 상황을 고려해 달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삼성전자 PC사업부 한 관계자는 “부품이나 포장지의 재료를 고를 때 재활용이나 폐기가 용이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 만큼 제품의 단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큰데, 이를 모두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는 없지 않겠냐”며 “결국 제조업체가 일부 흡수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바로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계열사인 가전업체 등과 연계해 재활용공장이나 회수센터를 마련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중소PC업체들은 재활용이나 회수에 드는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업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폐기물에 대해 제조업체가 책임지도록 하자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또 생산자가 나서야만 실제적인 회수 및 재활용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해외 PC업체들의 경우를 보듯 국내 PC제조업체들도 이제 적극적으로 폐PC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꼭 정부정책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연합 등 주요 수출국의 정책방향을 감안해서라도 이제 PC제조기술 못지 않게 재활용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또 정부 역시 업계에 모든 부담을 떠넘기기 보다는 회수 및 재활용 기술 개발에 일정 정도 연구비를 지원하거나 재활용률이 높은 기업에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기업들의 동참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인진기자 ij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