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밤, 열린음악회 공개방송이 열리는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아무래도 수상하다.
고상한 여자 아나운서 대신 개그우먼 송은이가 촌스러운 가발에 어울리지 않는 드레스를 입고 사회자로 등장한다. 이어 출연하는 가수들의 노래도 우스꽝스러운 노래 일색이다. 알고보니 이곳은 코미디TV의 패러디 전문 프로그램 ‘패러데이 나잇’(수요일 밤 11시 30분)의 생방송 현장이다. 코너명은 이름하여 ‘뚜껑열린 음악회’.
‘패러데이 나잇’의 패러디 코너는 그야말로 장르와 주제를 가리지 않고 질주한다.
‘퀴즈탐험 인간의 세계’ ‘출발 트림팀’ ‘정학퀴즈’ ‘메추리 알까기’ ‘369쇼핑’ 등 제목만 들어도 알 만한 프로그램들을 사정없이 비튼다.
‘심야 토의! 전화가 올까?’는 심각한 주제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침묵하던 패널들이 쉬운 질문이 나오면 너도나도 격렬하게 토론을 벌이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다.
가수 서태지의 ‘컴백홈’ 뮤직비디오를 ‘컴배콤’으로 패러디한 엽기가수 이재수 덕분에(?) 한층 고조된 패러디 열풍이 안방에도 몰아치고 있다.
패러디가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장르는 딱딱한 프로그램에 비해 변형의 여지가 많은 코미디 프로그램들.
MBC 코미디하우스의 ‘구중심처’는 SBS 대하드라마 ‘여인천하’의 코믹 버전이다. 이 코너의 핵심인물인 조혜련은 경빈 역을 맡아 표독스런 표정으로 “무에야?”를 연발해 웃음을 자아낸다.
KBS 개그콘서트는 일찌감치 패러디 코너를 선보여 인기를 모았다. ‘가을동화’에서부터 영화 ‘약속’ 등 다양한 고전을 각각 ‘에로버전’ ‘바보 버전’ 등으로 뒤바꿔 놓은 ‘버전개그’는 물론, 플래시 애니메이션 ‘엽기토끼’를 본딴 ‘옆집토끼’까지 등장했다.
최근에는 패러디가 도입되는 영역도 점점 파괴되고 있다. 케이블 음악채널 m.net은 자사 프로그램 광고에 패러디를 시도했다.
강렬한 하드록 음악을 배경으로 임은경이 토마토 세례를 받는 장면은 영락없는 TTL 광고지만 주인공은 소녀가 아닌 록그룹 크래시의 리더 안흥찬이다. 이른바 m·net 간판 프로그램인 타임투록의 약자인 TTR의 광고다.
m·net은 광고에서 그치지 않고 ‘What’s up, yo’와 같은 음악 프로그램에도 패러디를 도입하고 있다. 핑클은 핑클인데 멤버는 남자로 등장하는 식이다.
EBS가 최근 신설한 SF드라마 ‘춤추는 소녀 와와’ 역시 신선한 시도다. ‘베토벤의 ’운명’,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등 클래식 음악의 탄생과정 및 작곡가의 고뇌를 재미있게 패러디해 방영하기 때문이다.
코미디TV ‘패러데이 나잇’의 연출을 맡고 있는 권오준 PD는 “신랄한 풍자와 함께 편안한 웃음을 전하는 것이 패러디 프로그램의 매력”이라며 “패러데이 나잇에 대한 주문이 끊임없이 이어져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