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규제완화 및 산업육성 차원에서 제도 도입을 허용한 싱글로케이션의 시행 시기를 놓고 조변석개의 모습을 보이는 등 행정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따라 업계는 소신 행정을 펼치지 못하고 정부가 관련 업체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할 태세여서 파문이 예상된다.
문화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싱글로케이션 제도의 시행시기를 당초 계획보다 1년정도 늦춘 2003년 1월 1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문화부는 이에앞서 음반비디오물및게임물에관한법률(이하 음비게법) 개정안을 통해 이달 25일부터 이 제도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가 지난 7월 시행령 입법 과정에서 태도를 바꿔 내년 1월 1일부터 싱글로케이션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게임업계는 이 제도 시행에 대비해 제품개발 및 마케팅에 주력해 왔으며 일부업체에서는 이미 유통사와 공급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져 큰 피해가 예상된다.
◇왜 연기하나=문화부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아케이드 게임기에 대한 재등급 분류 방침에 따라 연내 폐기처분될 약 30만대에 이르는 게임기 케이스와 부품이 재가공될 우려가 높다는 점을 연기 사유로 설명하고 있다. 영등위의 재등급 분류는 과거 공중위생법 규정에 의해 검사를 받은 게임물을 99년 개정된 음비게법 성격에 맞춰 재분류하는 작업이다. 이미 영등위는 재등급분류 대상 1098종 가운데 1051종에 대해 집중심의대상(사용불가)으로 결정했으며 이들 대상 게임기에 대해서는 내년 1월 1일부터 단속에 나설 방침이다. 문화부는 이들 게임기가 유통되면 일대 혼란을 빚을 수 있으며 업계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재등급 대상 과연 문제되나=싱글로케이션 대상 게임물은 ‘전체이용가’로 제한되고 있다. 따라서 ‘18세이용가 게임물’은 설치할 수 없다. 반면 재등급분류 대상에서 집중심의대상 품목은 대부분 사행성 제품으로 전체이용가 판정을 받을 수 없는 게임기들이다. 따라서 이들 게임기가 그대로 싱글로케이션 위치에 들어설 수는 없다.
하지만 재등급분류로 쏟아져 나올 폐기대상 게임기의 케이스, 브라운관모니터, 전원부, 기타 부품 등이 재활용될 가능성은 없지 않다. 특히 정부는 다방, 당구장, 문구점 등에서는 저가제품을 찾기 때문에 이들 폐기대상 게임기가 그 대상이 될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또 일부에서는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당국의 사후관리 미비로 인해 이들 사행성 게임기들이 그대로 시장에 유입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긴 하다.
◇업계의 반응=개발 및 유통업계는 문화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태도다. 이미 입법예고를 통해 싱글로케이션 제도를 실내로 제한하고 시행 시기도 내년 1월 1일로 못박아놓고 또다시 연기결정을 내린 데 대해 정부가 이 제도를 허용해 줄 의사가 없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한마디로 업계를 우롱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싱글로케이션 제도 시행만 믿고 연초부터 관련 제품 개발에만 주력해 왔는데 황당하게 됐다”며 정부방침을 힐난하고는 “이 제도가 시행되지 않으면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입법예고한 시행령도 말그대로 기형적인데 그마저도 시행하지 않고 연기하겠다는 정부측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정부방침을 강력히 비난했다.
반면 싱글로케이션 제도 연기를 주장해온 게임장 업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반응이다.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의 관계자는 “사상 최악의 불황으로 하루 평균 50∼100개의 게임장이 폐업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싱글로케이션 제도를 연기키로 한 것은 시의절적한 조치라고 본다”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앞으로 일정과 전망=문화부는 부처간 협의를 통해 싱글로케이션 제도 시행 시기를 이미 연기키로 결정했고 시행령 개정안도 법제처로 넘어간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특별한 사안이 발생하지 않는한 원안대로 상정,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업계다. 이 제도의 시행만 믿고 제품개발에 나선 상당수 업체들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며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불황의 터널은 계속될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하겠다. 관계전문가들은 정부가 제도시행 연기만 결정할 게 아니라 아케이드게임업체들에 대한 지원대책도 함께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