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모그룹 계열분리 1년여 만에 재계 순위 4위로 껑충 뛰어오르며 주위로부터 얻고 있는 평가다. 실제로 지난 1년여간 현대차그룹은 국내에선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성적표를 기록했다. 강력한 기업 체질개선 작업을 통해 수익성과 독보적인 시장지위를 확보한 것은 물론, 이제는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재무건전성도 크게 향상시켰고 금융 등 미래 수종사업으로 발길을 뻗고 있다. 최근에는 그룹 정몽구 회장(63)의 친정체제로 조직정비를 완결함으로써 외형(매출)-총알(자금)-사람(인사) 등 전방위적인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1세기 성장비전으로 자동차·금융 등 2대 핵심사업과 철강·우주항공·인터넷 등 3대 육성사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출발은 순조로웠지만 5년, 10년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앞으로의 기업경영 환경. 현대차그룹이 구상중인 미래 청사진에 최근 재계의 관심과 견제가 쏟아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1년 만의 화려한 변신=현대차그룹은 최근 매출과 수익, 재무건전성 등에서
타 제조업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뚜렷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현대기아차와 현대모비스의 실적개선과 계열분리후 타 계열사 지원부담이 없어진 덕분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 상반기 당기순익이 사상 최대규모인 6105억원, 3421억원을 기록했다. 상반기 실적만으로 보자면 세계 완성차 업계 최고라는 평가도 나올 만큼 놀라운 수준이다. 현대모비스도 올 상반기만 1245억원의 순익을 올려 창사이래 최대의 반기장사를 했다. 재무구조 개선과 유동성 증가는 당연한 귀결. 현대차의 경우 올 상반기 순차입금 비율이 29%에 그친 반면, 유동성은 3조원 가까이 확보해 국내 제조업체 가운데 가장 여유있는 상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달말 현대차는 국내 기업 가운데 최고의 조건으로 6억달러 규모의 할부채권담보부증권(ABS)을 미국 현지에서 성공적으로 발행하기도 했다.
계열사 확장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현대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캐피탈 등 주력 계열사의 그늘에 가려 잘 드러나진 않지만 최근에는 다이너스카드·한국철도차량을 인수함으로써 총 18개 계열사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자동차 및 부품·소재, 연구개발, 서비스 분야가 10개 이상에 달해 역시 ‘자동차’에 집중 포진해 있다. 자동차 계열군의 자산규모 총액도 30조원에 육박해 사실상 그룹의 전부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룹은 자동차외 사업분야로 금융·서비스 4개(다이너스카드 포함), 철강 3개, 우주항공 1개, 인터넷 2개를 육성할 계획이라고 공식 발표하고 있다. 재계 순위 4위에 5개 업종의 18개 계열사는 앞으로 자동차가 현대차그룹의 단지 ‘상호’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미래구상=미래에도 그룹의 핵심은 역시 자동차. 현대차는 올 들어 오는 2010년까지 세계 5대 완성차 메이커가 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내수시장 탈피와 제품경쟁력 강화를 위해 미국 등 해외시장에 영업력을 대거 포진시키고 해외업체들과의 제휴를 통해 부품기술력을 조기 확보하겠다는 구상은 이같은 목적에서다. 2002년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중대형 상용차 엔진 합작법인을 설립한다는 계획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회사측은 설명한다. 현대차는 소형차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생산기지를 멕시코 등 해외로 단계적으로 이전하는 한편 글로벌소싱·마케팅·R&D체계를 구축키로 했다. 또한 사내 6시그마운동 정착과 더불어 오토에버닷컴(http://www.autoever.com)과 B2B·B2C 온라인사업을 연계함으로써 온·오프라인 조달·판매망을 만들 계획이다.
이에이치디닷컴(http://www.e-hd.com)과 현대기아차연구소는 지능형 자동차 분야인 이른바 ‘텔레매틱스’ 사업육성의 전진부대다. 고부가가치 차량개발과 해외판로·조달망 확대를 겨냥한 10여개 계열사의 협력모델인 셈이다.
그룹은 최근 현대캐피탈이 다이너스카드를 인수함으로써 숙원사업이던 금융업 확장의 발판도 마련했다. 종전 자동차 할부금융에 제한됐던 사업영역이 앞으로는 종합여신업으로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장기비전으로 자동차-금융 등 2강 주력사업을 기초로, 철강·우주항공·인터넷 등 3약 신규사업을 발
굴, 활로를 모색할 계획이다.
◇결국 선택과 집중=현대차그룹의 미래구상이 현실화하기 위한 관건은 무엇보다 ‘자동차’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이라고 주변에선 입을 모은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현대모비스의 한국철도차량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나, 자동차 소재외의 철강사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증권가의 우려는 이같은 이유에서다.
현대증권 리서치센터 김학주 애널리스트는 “자동차와 모비스, 현대캐피탈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부품기술과 텔레매틱스 등 신기술 확보가 관건”이라며 “현재의 계열사 구도 정도가 적합한 수준으로 보이며 더이상의 확장은 불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점에서 현재 모비스외에 자동차 R&D 및 부품·소재·서비스군으로 거느리고 있는 군소 계열사의 역할론도 앞으로는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분야에서는 현대캐피탈이 비록 할부금융의 노하우를 지니곤 있지만 보다 포괄적인 여신관리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부담이다. 이와 함께 인터넷 등 새로운 채널을 도입함으로써 자동차 온라인소싱·판매전략을 정착시키고, 카드사업을 자동차-백화점-정유-건설 등과 묶어내 시장진입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과제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