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는 ‘엽기’열풍으로 뜨겁다.
차태현과 전지현 주연의 ‘엽기적인 그녀’가 5주 연속 흥행 1위를 기록하더니 급기야는 개봉 33일째인 지난달 28일 전국 관객 400만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개봉 33일 만에 400만명을 동원한 것은 ‘친구’의 23일째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38일과 ‘신라의 달밤’의 47일보다 훨씬 앞선다.
그래서 요즘 충무로는 신바람이 났다. 세계적으로 천문학적인 흥행수익을 올렸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대작들이 한국 영화에 잇따라 무릎을 꿇고 있기 때문이다.
올 봄 ‘신라의 달밤’이 흥행행진을 계속할 때 영화 관계자들은 여름시장을 겨냥한 할리우드 대작들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되면 한국영화 붐은 잠잠해 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엽기적인 그녀’는 그야말로 영화계를 엽기적으로 정복하고 말았다.
‘신라의 달밤’과 ‘엽기적인 그녀’의 연타석 만루 홈런은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 아니라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얻어낸 것이기에 더욱 값지다.
지난 여름 극장가는 ‘진주만’을 필두로 ‘미이라2’ ‘슈렉’ ‘쥬라기공원3’ ‘파이널환타지’ 등 하나같이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 부은 대작들이 즐비했다.
특히 8월에 개봉한 팀 버튼의 ‘혹성탈출’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A.I.’는 개봉 전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신라의 달밤’의 뒤를 이어 ‘엽기적인 그녀’가 극장가를 평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로 인해 영화관계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우리 영화가 최고’라는 식의 생각으로 어깨가 우쭐해진 것도 사실이다.
지난 60, 70년대 한국영화가 최고의 전성기를 이룬 이후 40여년 만에 르네상스를 맞는 것 아니냐는 흥분섞인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를 넘어서자 이를 환영하는 목소리와 함께 ‘이게 아닌데’라는 우려도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오고 있다.
우리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를 넘게 되면 영화시장 개방압력이 그만큼 거세진다는 것과 국산 히트작 몇 편이 스크린을 모두 점령해 버리고 나면 나머지 작품들은 갈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국내 영화산업을 황폐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두가지 주장은 모두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영화시장 개방압력이 무서워 40%를 넘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시장점유율을 더 높일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국산 영화들이 극장을 점령하지 못했을 때 할리우드 영화들이 그 자리를 독차지했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지금과 같은 국산영화의 르네상스는 우리영화가 새로운 발전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젊은 감독들의 실험정신과 소재의 우리것화, 관객들의 성숙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모처럼 찾아온 국산영화의 르네상스에 찬 물을 끼얹기보다는 더 잘 되기를 바라는 힘찬 격려가 필요한 때다.
<문화산업부=김병억팀장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