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보를 눈으로 보고 느끼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를 구현하는 반도체와 함께 이를 표현하는 디스플레이의 중요성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현재 디스플레이 산업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브라운관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 가면서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유기EL, 전계방출디스플레이(FED) 등 TFT LCD의 왕좌를 물려받으려는 신기술이 줄지어 등장하는 형국이다.
이미 몇몇 업체에서 양산에 돌입한 PDP의 조기 대중화를 위해 새로운 재료나 기술을 개발, 원가를 낮추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으며 아직 표준화된 생산기술이 없는 유기EL 산업에서는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을 먼저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대단하다.
주력 디스플레이의 자리를 내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브라운관 산업에서도 싸고 안정적인 품질을 무기로 슬림화 및 고정세화에 집중하면서 디지털 방송 시대의 한축을 차지하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고 TFT LCD 업체들은 고해상도·고휘도·광시야각 기술 등을 통한 성능 향상에 집중하거나 휴대형 단말기 시장을 겨냥해 반사형, 저온폴리 TFT LCD 등 새로운 기술에 대한 상용화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초기기술개발단계에 머물러 있는 첨단 디스플레이인 FED와 진공형광디스플레이(VFD), MEMS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등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획기적인 반전을 기대하며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그동안은 크기나 용도별로 어느 정도 디스플레이가 정해져 있었던 상황이었으나 최근 삼성전자가 40인치 TFT LCD TV를 선보이면서 ‘대형 시장은 PDP가 석권할 것’이라던 고정관념을 깨 버리고 TFT LCD가 ‘저온폴리’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휴대형 단말기시장 진입을 준비하는 등 영역 구분이 희미해져가면서 모든 영역에서의 디스플레이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도 현 디스플레이 산업의 큰 특징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기술을 두루 보유하거나 확보할 수 있는 기업들이 시장을 석권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업체들보다 늦게 출발해 브라운관 시장을 석권한 우리나라는 브라운관의 뒤를 잇는 대표적인 평판디스플레이(FPD)인 TFT LCD 분야에서도 최근 세계 제1의 생산국에 올라섰다.
조만간 디스플레이 시장이 D램 반도체 시장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을 정도로 디스플레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TFT LCD 1위 생산국이라는 타이틀은 자랑할 만하다. 지금까지는 반도체가 최고의 수출 효자상품이었지만 앞으로는 디스플레이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탠퍼드리소스(SRI)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오는 2006년에 TFT LCD의 시장규모가 브라운관 시장규모를 앞지를 것이라고 하니 힘들게 차지한 TFT LCD 1위 자리를 다른 나라의 추격으로부터 계속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TFT LCD 이후의 제품에 대한 준비에서도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업체에 이어 이제 막 양산의 첫발을 내딛은 PDP는 양산라인 안정에 따른 수율향상으로 가격이 서서히 하락하고 있어 2003년에는 가정용 대형 TV시장에서도 자리를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차세대 유기EL 디스플레이 산업에서도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삼성SDI, LG전자 등의 대기업과 네스디스플레이, 엘리아테크, CLD 등 기술기반의 벤처기업들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브라운관 시절과 TFT LCD 초기에는 이미 개발된 기술을 들여와 우리 것으로 소화한 후 뛰어난 공정기술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생산을 통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PDP, 유기EL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있어서는 일본 등 선진국과 같은 출발선상에서 기술개발을 통한 사업화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차세대 디스플레이 산업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은 G7 등의 국책과제 등을 통한 산학 협동이 잘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G7 국책과제를 통해 TFT LCD 산업의 초기 발전에 초석을 만들었으며 PDP 등 차세대 신제품에 대한 기반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실제 산업에 적용함으로써 일본과 거의 동일한 시점에서 양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디스플레이 강국에 걸맞은 국제 학술대회 및 전시회(IMID 2001)가 대구에서 열리면서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의 끈끈한 산학연 협동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현재의 분위기는 예전만 못한 것 같다. 각종 전시회에 참여하는 업체들의 수가 급감하고 시설투자계획이 연기되는 등 디스플레이 산업 자체가 많이 위축돼 있으며 정부에서도 G7 사업 이후의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학계 및 연구소의 연구개발의욕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자칫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 탑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일본은 샤프, 히타치 등 대표적인 디스플레이 대표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반사형 TFT LCD 개발을 비롯한 차세대 LCD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첨단 기술개발을 통한 디스플레이 왕좌 재탈환을 노리고 있고 대만은 최근 현대디스플레이테크놀로지(HYDIS)를 인수한 대만 캔두를 비롯해 수많은 업체들이 정부의 지원하에 과감한 시설투자를 단행하고 있으며 첨단산업의 새로운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까지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각 국가간의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따라서 이럴 때일수록 위축되지 말고 미래를 대비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산업체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산학연이 하나돼 디스플레이 산업 초기,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했던 기억을 되살려 다시금 연구개발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정부 역시 대만, 중국 및 일본의 지원방안을 분석해 우리의 실정에 맞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특히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기초기술과 부품소재, 장비산업의 육성을 위해 종합적인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해 산학연의 연구개발 의지를 북돋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그동안 주로 양적으로 성장해온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이 질적으로도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대단히 중요한 시기다. 학계는 각종 학술대회의 활발한 개최를 통해 서로의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이를 실제 산업에 재빨리 적용시킬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해야 하며 산업체 역시 중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장비 및 부품·소재 중소업체들과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정부는 이러한 활동이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할 것이다.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