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수출 이제부터가 시작이다](상)절반의 성공

 ◆“이제 한번쯤 숨고르기를 하며 해외 정보화 시장 진출에 대한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할 시점입니다.”

 사상 최대규모의 해외 시스템통합(SI) 프로젝트로 기대를 모았던 베네수엘라 전자주민카드사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그간 국내 업계가 경쟁적으로 추진해 온 해외 SI프로젝트 수주에도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올해를 SI수출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세계 무대에 뛰어든 국내 업체들이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와 베네수엘라,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흘린 땀과 노력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지난 2∼3년간 국내 SI업체들이 해외 정보화 시장 진출을 위해 노력한 결과와 성과를 점검함으로써 반도체와 자동차에 이어 SI가 한국의 새로운 수출 주력품목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실질적인 사업 결과를 따지기 이전에 베네수엘라,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잘 알려지지도 않은 나라에서 우리 기업이 세계 유수 IT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입니다.”

 최근 벌어진 베네수엘라 사태를 바라보는 대부분의 SI업체들은 “국내 업체가 잘못했다기보다는 해외사업 과정에서 이번 베네수엘라와 같은 돌발상황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반응들이다.

 LGEDS시스템 글로벌마케팅부문 박규수 수석은 “국내 SI업계가 주요 공략 대상으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사전 일정에 맞는 프로젝트 추진과 투명한 사업자 선정 과정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그만큼 정치 환경과 문화가 다른 해외지역에서 대규모 IT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얘기다.

 국내 한 SI업체의 대표가 “해외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1년 중 절반 이상을 외국에서 보내겠다”고 선언한 데 대해 다른 경쟁회사 사장은 “그렇게 해서라도 프로젝트를 따올 수만 있다면 1년 내내 해외에 머물겠다”고 말할 정도다.

 실제로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가 아니더라도 올들어 대형 SI프로젝트가 금방 쏟아질 것만 같던 중동지역만 해도 실제 사업은 계속 연기되고 있고 말레이시아 병원 프로젝트나 태국의 금융 프로젝트도 여전히 답보 상태다.

 최근 떠오른 멕시코 전자정부사업도 국내 업체들이 다른 경쟁국에 비해 프로젝트 수주에 한발 앞서 있다고는 하나 거대 야당이 버티고 있는 국회의 인준과정을 거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현지 합작사와 국내 업체간 프로젝트 수주 몫을 놓고 승강이가 벌어질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어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부담을 안고 해외 프로젝트 수주에 나선 국내업체들이지만 진출한 국가의 현실과 실정에 따라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프로젝트가 당초 계획보다 1∼2년 이상 연기되고 생각지도 않던 돌발사태가 발생해도 이를 해결할 만한 현지 전문가는 물론이고 마땅한 의사전달 창구조차 없는 실정이다.

 SKC&C 이준희 상무는 “국내 업체가 해외시장 진출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현지 전문가 대부분이 스스로를 최종 의사결정권자 내지는 이들과 피를 나눈 정도의 형제 관계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닐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한다.

 이같은 악조건 속에서 진행된 국내 SI업체들의 해외진출은 마구잡이식 해외 사업추진과 국내 업체간 공조 와해로 IT업계의 전체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낳았다. 국내 SI업체가 개발도상국가를 중심으로 한 해외 정보화사업을 통해 과연 수익을 올릴 수 있느냐도 여전히 의문이다. “해외 건설 프로젝트 사상 최대인 61억달러 규모의 2단계 리비아 대수로공사를 수주하며 ‘중동신화’를 이끌던 동아건설이 침몰한 것은 먼 과거 얘기가 아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지난 2∼3년간 SI수출에 쏟은 노력의 결과, IT 불모지나 다름없는 베트남,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해외지역에서 실제 정보화사업을 수주하고 이를 수행해냄으로써 국내 SI기술의 수출 가능성을 직접 확인한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었다”는 것이 SI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